2026년 0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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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인구 상한’ 국민투표가 부결된 배경에는 ‘시니어를 돌볼 손’에 대한 걱정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스위스 유권자들이 자국 인구를 일정 수준에서 묶어 두자는 제안을 국민투표로 부결시켰습니다. 한 나라가 스스로 인구의 상한선을 법으로 정할지를 묻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투표였습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의 6월 15일 자 보도에 따르면, 이 사안은 ‘스위스판 브렉시트’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사회를 깊게 갈라놓았습니다. 부유하고 질서정연한 나라가 왜 이런 고민에 빠졌는지, 그리고 그 결말이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지 차분히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 첫 ‘인구 상한’ 국민투표

이번 법안을 발의한 곳은 스위스 하원 제1당이자 우파 성향의 스위스 국민당(SVP)입니다. 가디언 보도를 정리하면, 투표 결과 반대가 54.79%, 찬성이 45.21%로 집계되었고 투표율은 58.86%였습니다. 만약 법안이 통과되었다면 스위스 정부는 현재 약 910만 명인 인구를 2050년까지 1,000만 명 안쪽으로 묶어야 했고, 인구가 950만 명에 이르는 순간 가족 결합과 거주 허가, 망명 승인 등을 즉시 제한해야 했습니다. 나아가 정해진 임계치를 넘기면 유럽연합(EU)과 맺은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 협정을 파기하도록 규정해, 사실상 유럽 단일 시장 접근권을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찬성의 논리와 부결의 배경

찬성 측의 주장에도 새겨들을 대목은 있었습니다. SVP는 빠른 인구 증가가 공공 기반시설과 주택 시장, 사회 복지 제도와 천연자원, 그리고 오랜 ‘전통적 생활 방식’에 부담을 준다고 보았습니다. 질서와 안정을 중시하는 시각에서 보면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문제 제기입니다.

다만 숫자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가디언이 인용한 스위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02년 자유이동협정 발효 이후 인구가 23%가량 늘어나는 동안 전체 경제 생산(GDP)도 약 24% 함께 증가했습니다. 인구 유입이 곧 부담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현재 스위스 거주자 가운데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 비율은 약 27%입니다.

여론조사 기관 GFS 베른(GFS Bern)의 우르스 비에리 연구원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법안이 통과될 경우 유럽연합과의 외교 관계가 깨지고 노동 시장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을 유권자들이 우려했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고령화가 진행되는 사회에서 시니어를 돌볼 요양·보건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사람들이 가장 깊이 걱정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고령화가 드러낸 ‘돌봄의 산수’

바로 이 지점이 핵심입니다. 인구가 고령화되면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늘어나는데, 그 돌봄을 감당할 일손은 자국 안에서만 채우기가 어렵습니다. 스위스의 4대 주요 정당 장관들로 구성된 7인 연방 내각이 일찌감치 한목소리로 반대했고, 경제계와 중소기업 단체들 또한 외국인 전문 인력의 공급 통로가 막힐 것을 우려해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발의 정당 소속 장관들까지 포함된 내각이 반대했다는 사실은, 이 사안이 좌우의 대립이라기보다 국가 존립의 실리에 관한 문제였음을 보여 줍니다. 결국 스위스 사회는 ‘국경을 닫는 명분’보다 ‘돌봄을 지키는 실리’를 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고령사회 한국이 마주한 같은 물음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2024년 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돌봄을 받아야 할 시니어는 빠르게 늘지만, 요양보호사와 간병 인력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외국 인력을 가사·돌봄 분야에 활용하려는 시범사업을 추진해 온 것도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구체적 도입 규모와 그 성과에 대한 평가는 기관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스위스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고령화 시대의 돌봄 인력 문제는 ‘개방이냐 폐쇄냐’라는 구호로 풀리지 않으며, 감정이 아니라 산수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빗장과 개방 사이, 합리적 기준의 자리

오해는 없어야 하겠습니다. 무분별한 개방을 옹호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인구와 이민의 문제에서 질서와 안전, 공동체의 결속을 지키려는 가치는 여전히 소중합니다. 핵심은 빗장을 걸 것인가 활짝 열 것인가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과 검증을 갖추는 일입니다. 들여올 인력의 자격과 처우, 사회 통합의 방안을 꼼꼼히 설계하는 지원(Fördern)과,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관리 기준을 함께 요구하는 자세(Fordern), 이 둘의 균형이 답에 가깝습니다.

무엇보다 시니어를 ‘돌봄을 받기만 하는 약자’로만 바라보는 시선부터 거두어야 합니다. 오늘의 시니어는 평생 사회를 떠받쳐 온 경험의 자산이며, 다음 세대가 어떤 돌봄 체계를 세워야 하는지를 가장 잘 일러 줄 수 있는 세대입니다. 스위스 유권자들이 보여 준 냉정한 현실 감각, 곧 선동에 휩쓸리지 않고 사실과 결과를 따져 묻는 태도야말로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