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집을 지키려는 마음, 그러나 큰 비용과 ‘플랜 B’ 준비는 함께 따져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어디서, 어떻게 노후를 보낼 것인가 하는 물음은 누구에게나 무겁게 다가옵니다.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 교외에 사는 80대 초반의 한 부부는 방 네 개짜리 큰 집을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대신, 살던 집을 고쳐 그대로 머물기로 결정했습니다. 여러 대안을 두루 견주어 본 끝에 내린 선택이었습니다. 이처럼 살던 집에서 노후를 맞이하는 흐름, 곧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를 택하는 시니어가 미국에서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살고 싶은 마음과 집의 현실 사이
미국은퇴자협회(AARP)가 2024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50세 이상 미국인의 약 75퍼센트가 지금 사는 집에서 가능한 한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고 답했습니다. 문제는 정작 그 집들이 노후 생활에 적합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미국 인구조사국이 2020년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계단 없는 현관과 1층 침실·욕실, 욕실 안전손잡이를 두루 갖춰 이른바 고령화 준비가 된 집은 열 채 가운데 한 채 남짓에 그쳤습니다. 계단과 욕조, 좁은 출입구, 미끄러운 바닥은 나이가 들수록 낙상의 위험 요인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산업이 된 자택 노후, 그리고 만만치 않은 비용
그럼에도 오늘의 시니어에게는 과거 세대와 다른 이점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역사상 가장 자산이 넉넉한 시니어 세대로 꼽히며, 살던 집에서 나이 들고자 하는 이들을 돕는 서비스도 한층 다양해졌습니다. 공인 전문가와 리모델링 업체, 컨설턴트가 늘면서 하나의 거대한 산업을 이루었고, 차량 호출 서비스가 운전대를 놓은 시니어의 이동을 돕고, 낙상 감지 센서와 보안 초인종 같은 스마트홈 기술이 안전을 보강합니다.
다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은 분명히 짚어야 합니다. 젠워스(Genworth)와 케어스카우트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로체스터 지역 생활 지원 시설의 1인당 평균 연간 비용은 약 8만 4000달러(약 1억 2700만 원, 1달러 약 1513원·2026년 6월 16일 종가 기준)에 달했습니다. 앞서 그 부부 역시 시설 입주와 신축, 자녀 상속 등을 두루 검토했으나 길이 마땅치 않자,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했던 남편이 직접 설계 소프트웨어로 1층 증축안을 그렸고, 이를 위해 약 30만 달러(약 4억 5400만 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았습니다. 욕실 한 곳을 고치는 데에도 4만 5000달러(약 6800만 원) 이상이 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
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나라 역시 정든 집, 익숙한 동네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는 시니어가 많지만, 정작 집은 그 바람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다행히 미국처럼 수억 원을 들이지 않더라도 안전을 보강할 길은 열려 있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복지용구 급여를 활용하면 안전손잡이와 미끄럼방지 매트, 실내용 경사로 같은 용품을 연간 160만 원 한도 안에서 구입하거나 빌릴 수 있습니다. 또한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행정복지센터에서 시니어와 주거 약자를 위한 주택 개조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니, 거주지 행정복지센터에 확인해 두면 도움이 됩니다.
지금의 건강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끝으로 되새겨 볼 것은 플랜 B의 지혜입니다. 거주지 문제를 오래 연구해 온 라이언 프레더릭(Ryan Frederick)은, 오늘 통하던 방식이 내일은 통하지 않을 수 있는 만큼 차선의 계획을 함께 마련해 두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일주일에 여러 차례 운동을 하며 제 나이보다 열 살은 젊게 느낀다는 그 부부의 아내조차, 문득 큰돈을 들인 증축을 충분히 누릴 만큼 건강이 이어질지 스스로 묻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부는 돌봄 도우미를 위한 방과 의료용 침대를 들일 공간까지 미리 비워 두었습니다.
집을 고치고 노후 자금을 마련하는 일은 한 번의 결정으로 오랜 세월을 좌우합니다. 정든 집을 지키려는 마음은 더없이 소중하지만, 그 마음이 무리한 지출이나 막연한 낙관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앞으로의 생활 변화와 비용을 넉넉히 헤아리는 냉정함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건강이 영원하리라 단정하지 말고, 큰 결정일수록 혼자 판단하기보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와 충분히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살던 집에서 존엄하게 나이 들고자 하는 바람은, 따뜻한 의지와 현실적인 준비가 함께할 때 비로소 든든한 계획이 됩니다.
※ 이 칼럼은 미국 현지 보도와 미국은퇴자협회(AARP) 2024년 주거 선호 조사, 미국 인구조사국 2020년 보고서, 젠워스·케어스카우트 2025년 요양비용 조사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환산액은 2026년 6월 16일 종가 기준 1달러 약 1513원을 적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