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도시에서 벌어진 짧은 드라이브
지난 7월 하순, 독일 라인란트팔츠(Rheinland-Pfalz)주의 작은 마을 랑엔론스하임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습니다. 87세 여성이 남의 승용차에 올라타 그대로 몰고 사라진 것입니다. 차주는 장을 본 물건을 내리는 동안 시동 열쇠를 꽂아 둔 채였고, 이 시니어 여성은 그 차를 자신의 차로 굳게 믿고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다행히 결말은 조용했습니다. 여성은 얼마 가지 않아 주유소에 차를 세웠고, 뒤를 쫓아온 차주가 매장 안에서 말을 붙이며 시간을 끄는 사이 경찰이 도착했습니다. 아들이 와서 어머니를 모셔갔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관할 경찰은 차량 무단 사용 혐의로 형사 절차를 개시했고, 이 사실을 운전면허 관청에 통보했습니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이 AFP 통신을 인용해 전한 내용입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악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절차는 절차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사고가 아니라 경고입니다
이 일을 두고 ‘해프닝’이라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열쇠가 꽂힌 차, 자신의 차라는 확신, 그리고 도로 위로 나선 짧은 주행. 이 세 가지가 조금만 다르게 겹쳤다면 결과는 전혀 달랐을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인지 기능의 저하는 기억력 감퇴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익숙한 장소를 혼동하거나 자신의 소유물을 착각하는 지남력(指南力, Orientierung) 저하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운전 능력 자체는 남아 있는데 상황 판단이 흐려지는 구간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본인도, 가족도 알아차리기 가장 어려운 시기가 바로 이 구간입니다.
독일과 한국, 제도의 온도차
독일은 유럽에서도 시니어 운전자에 대한 규제가 느슨한 편에 속합니다. 일정 연령이 되면 의무적으로 적성검사를 받도록 하는 제도가 없고, 본인의 판단과 가족의 설득에 상당 부분을 맡겨 왔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곧바로 면허 관청에 통보한 것은, 사후적으로라도 개별 심사를 거치게 하는 우회 장치가 작동한 결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다릅니다. 도로교통법에 따라 만 75세 이상 운전자는 면허 갱신 주기가 3년으로 짧아지고, 갱신 시 고령운전자 교통안전교육을 반드시 이수해야 하며 여기에 인지능력 자가진단이 포함됩니다. 65세 이상 75세 미만은 갱신 주기가 5년입니다. 여기에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전면허 자진반납 시 교통카드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도의 뼈대는 이미 갖춰져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저는 시니어의 운전대를 나이만으로 빼앗는 방식에 반대합니다. 여든이 넘어서도 정확하게 운전하시는 분이 계시고, 예순에 이미 위험한 분도 계십니다. 나이는 기준이 될 수 없고, 기준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다만 반대로, 나이를 이유로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 역시 옳지 않습니다. 독일 경찰이 87세 여성에게도 절차를 그대로 적용한 것은 냉정해 보이지만, 실은 그분을 한 사람의 온전한 시민으로 대우한 것입니다. 형사 절차와 면허 심사를 거쳐야 재발을 막을 수 있고, 그것이 결국 본인의 안전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도로 위의 질서와 안전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이동할 권리라는 시니어의 존엄입니다. 이 둘은 대립하지 않습니다. 능력 기반의 정밀한 심사와 충분한 이동 대안, 이 두 축이 함께 마련될 때 비로소 양립합니다.
지원할 것은 넉넉히 지원하되, 요구할 것은 분명히 요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시니어 세대를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책임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하는 태도라고 저는 믿습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