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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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통념부터 걷어내야 합니다

요즘 청년 세대를 두고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책은 읽지 않고, 사람은 만나지 않으며, 화면 속에서만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념은 언제나 게으른 판단의 다른 이름입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가 2026년 7월 31일자 지면의 여행·도시문화 섹션인 FT 글로브트로터(FT Globetrotter)에 실은 발레리아 베르긴츠(Valeria Berghinz) 기자의 현장 기록은, 런던의 20대들이 정반대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나이트클럽에서 열리는 출판기념회

런던의 청년들은 서점 한켠에서 미지근한 와인을 나누던 종래의 출판기념회를 그대로 물려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형식을 해체했습니다. 출판사의 후원 없이 청년 기획자들이 직접 행사를 꾸리고, 장소는 나이트클럽과 바, 갤러리로 옮겼습니다. 홍보는 인스타그램으로 이루어지며 표는 순식간에 동이 납니다. 신간 소개든 시 낭송이든 강연이든, 행사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뒤풀이로 이어집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호 리딩 시리즈(Soho Reading Series)입니다. 설립자 톰 윌리스(Tom Willis)는 표를 사면 책 한 권을 함께 주는 방식을 택했고, 이 모델로 올해에만 약 8,000권의 책이 독자에게 건네질 것으로 추산합니다. 참가비는 15파운드에서 35파운드(약 2만 8천 원에서 6만 5천 원) 수준이며 책값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모임인 로스트 프로퍼티(Lost Property)는 10분짜리 강연 네 편을 이어 붙이는 형식입니다. 원고를 읽는 것은 금지되고 즉흥적인 말하기가 권장되며, 자기 홍보는 엄격히 배제됩니다. 참가비는 10파운드에서 12파운드(약 1만 9천 원에서 2만 2천 원)입니다. 설립자 레티 콜(Letty Cole)은 사회생활은 부족하지 않았으나 대화의 깊이가 아쉬웠다는 것이 출발점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책인가

이 현상의 뿌리는 결핍입니다. 청년들은 온라인에서 무한한 정보를 소비하지만, 소비는 관계를 만들지 못합니다. 짧은 영상은 요약을 주되 사유를 주지 않고, 알고리즘은 취향은 맞춰주되 사람은 붙여주지 못합니다. 10분이라는 강연 길이는 짧은 영상 문법에 대한 의도적인 반작용이며, 원고 낭독을 금지한 규칙은 편집된 언어가 아닌 사람의 말을 되찾으려는 시도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이들이 즐거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윌리스는 화려함은 덤일 뿐 본질은 문학이라는 취지로 선을 그었습니다. 대의를 앞세워 재미를 억누르지도 않았고, 재미에 취해 알맹이를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형식은 유연하되 중심은 단단한 것, 이것이 이 흐름이 유행에 그치지 않는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물음

한국의 독서 인구 감소와 관계 단절은 청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시니어 세대에게 더 절실한 과제입니다. 우리 주변의 독서 모임과 문화 강좌를 떠올려 보십시오. 형식은 정중하나 활기가 부족하고, 참석자는 앉아서 듣기만 하다 흩어지기 일쑤입니다. 런던의 청년들이 증명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 사람을 부른다는 사실입니다.

시니어 세대에게는 청년들이 갖지 못한 자산이 있습니다. 살아온 시간과 읽어온 책, 그리고 겪어낸 판단입니다. 다만 그 자산이 강단 위 훈화의 형태로만 전달된다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서로가 말하고 듣는 자리로 형식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 도서관과 복지관, 교회와 동창 모임이 그 실험의 무대가 될 수 있습니다.

오래된 것이 가장 새로운 것입니다

이 소식이 반가운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런던의 청년들이 새로 발명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웃고, 좋은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는 일. 우리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되 편리함에 밀려 소홀히 했던 그 방식으로 청년들이 되돌아온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형식뿐이고, 지켜야 할 본질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대면과 독서, 공동체라는 오래된 질서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지켜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을 시대에 맞게 바꾸는 유연함을 갖추는 것입니다. 원칙에는 완고하되 방법에는 열려 있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시니어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가장 값진 유산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런던의 청년들이 멋져 보이는 까닭도, 결국 그들이 우리가 옳다고 여겨온 것을 자기 방식으로 다시 증명해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