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점가에는 성공과 행복을 약속하는 자기계발서가 넘쳐납니다. 그러나 정작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독일의 원로 철학자 오트프리트 회페(Otfried Höffe) 튀빙겐대 명예교수는 최근 독일 일간지 디 벨트(Die Welt)와의 인터뷰에서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짚었습니다. 그는 오늘날의 조언서들이 오히려 삶의 본질에서 시선을 딴 데로 돌리고 있다고 진단하며, 참된 마음의 평정(Gelassenheit)에 이르는 길은 화려한 성공 공식이 아니라 세네카와 에피쿠로스 같은 고전 철학자들의 소박한 지혜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회페 교수가 새 저서를 통해 재조명한 것은 유럽의 도덕주의자(Moralist) 전통입니다. 오늘날 이 단어는 흔히 타인에게 손가락질하며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을 연상시키지만, 그가 말하는 도덕주의자는 이와 정반대입니다. 세네카, 에피쿠로스, 라 로슈푸코, 파스칼, 니체로 이어지는 이 지적 전통은 인간의 실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겉으로 내세운 미덕 뒤에 숨은 동기까지 냉철하게 들여다본 사상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의 공통된 무기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처세의 지혜(Weltklugheit)와, 장황하지 않고 간결한 문장이었습니다.
회페 교수는 이를 오늘날의 처세서들과 뚜렷이 대비시킵니다. 현대의 자기계발서가 평범한 언어로 장황하게 조언을 늘어놓는 데 비해, 옛 도덕주의자들은 짧고 날카로운 경구로 세월이 흘러도 곱씹을 만한 지혜를 남겼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짧은 글을 선호하는 오늘날의 SNS를 반긴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를 소화할 시간조차 갖지 못하는 현대인의 처지를 우려하며, 어린 시절부터 인터넷에 지나치게 노출될 경우 스스로 사고하고 호흡하는 능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물질과 쾌락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그의 통찰은 이어집니다. 그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가 자주 오해받아 왔다고 말하며,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일찍이 쾌락 그 자체를 인생의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음을 상기시켰습니다. 정작 에피쿠로스가 말한 좋은 삶의 조건은 작은 정원과 소박한 먹거리, 그리고 몇몇 좋은 벗이 전부였다는 것입니다. 회페 교수는 이 이치가 오늘날에도 다르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이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즉 자신과 세계에 대한 신뢰와 안도감은 가난한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외여행에 대한 통념에도 그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낯선 여행지의 언어나 역사를 진지하게 익히는 이가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되물으며, 평생 고향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고도 학술 서적과 여행자들의 기록, 방문객과의 대화만으로 세계를 이해했던 이마누엘 칸트를 진정한 세계인의 모범으로 제시했습니다. 자원과 소비가 곧 성장이자 미덕으로 여겨지는 오늘의 소비사회에 던지는 무거운 질문이라 할 만합니다.
삶의 본질을 이야기하며 그는 죽음의 문제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가 늘 떠날 채비를 갖추고 살라고 조언했던 대목을 인용하며, 기대수명이 늘고 의학이 발전했다고 해서 삶의 한가운데에 이미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오랜 통찰을 낡은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건강하던 지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일을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겪지 않았습니까. 장례를 치른 뒤 가족과 지인들이 한데 모여 음식을 나누며 슬픔 속에서도 서서히 다시 웃음을 되찾는 독일의 오랜 관습 역시, 상실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인간적인 진리를 보여준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이러한 회페 교수의 통찰은 우리 시니어 세대의 삶의 경험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않던 시절을 통과해 온 시니어 세대는 소박한 살림 속에서도 가족과 우정, 신의를 지켜온 경험을 몸소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회페 교수가 강조한 처세의 지혜, 즉 온갖 역경 속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는 능력과 다르지 않습니다. SNS를 통해 끊임없이 타인의 성취와 소비를 확인하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에게, 오히려 시니어 세대의 이러한 삶의 태도는 배움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회페 교수의 조언을 성장과 소비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합니다. 그가 말한 절제는 자기를 억누르는 금욕이 아니라,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 위한 합리적 기준을 세우자는 취지에 가깝습니다. 가족의 결속과 벗과의 신의를 지키고,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하루하루를 정직하게 살아가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시대와 국경을 넘어 시니어 세대가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유산이 아닐까 합니다. 눈높이를 낮추되 삶의 본질만은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처세의 지혜일 것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