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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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라는 이름의 편리한 감옥

요즘 세상은 온통 세대 이야기입니다. MZ세대가 어떻다, 베이비부머가 어떻다, X세대가 어떻다는 말이 뉴스와 유튜브와 대화 속을 넘쳐흐릅니다. 마치 태어난 연도만 알면 그 사람의 가치관, 소비 성향, 정치 성향까지 전부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습니까?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설명할 수 있습니까?

지난 2026년 4월 9일, 스페인의 권위지 『엘 파이스(El País)』에 아르헨티나 출신 저널리스트 마르틴 카파로스(Martín Caparrós)의 칼럼 「세대에 대하여(De generaciones)」가 실렸습니다. 그는 이 글에서 현대 사회가 ‘세대론’이라는 틀로 사람들을 분류하는 관행에 날카로운 의문을 던집니다. 그의 논지는 간명합니다. 세대론은 사회 계급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편리한 허구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주장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 특히 시니어 세대를 향한 오늘날의 시선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볼 때, 이 문제는 단순한 지적 유희가 아닌 매우 실질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봅니다.

‘붐(Boom)’에서 시작된 분류의 역사

카파로스는 세대론의 기원을 추적합니다. 그에 따르면 ‘베이비붐’이라는 개념은 1950년대 초, 센트럴 파크가 아이들로 가득 찬 모습을 목격한 미국 언론인 실비아 F. 포터가 만들어낸 표현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적 번영이 낳은 출산 급증을 설명하는 단어였습니다. 이 개념이 거대한 반향을 일으키자, 마케터와 분석가들은 너도나도 세대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1946년에서 1964년생은 ‘부머(Boomers)’, 1965년에서 1980년생은 ‘X세대’, 그 뒤를 이어 밀레니얼 세대(1981~1996), Z세대(1997~2012)가 연대순으로 정의되었습니다.

카파로스가 짚는 핵심은 이렇습니다. ‘생성하다(generate)’라는 역동적인 동사가, 특정 연도에 태어났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정의하는 명사로 전락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98세대’ ’27세대’처럼 문학적·사상적 공적을 이룬 집단에게만 ‘세대’라는 명칭을 부여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태어난 해만 같으면 모두 한 묶음이 되었습니다. 이는 세대론의 민주화가 아니라, 세대론의 조잡화입니다.

세대론이 가리는 것: 계급

카파로스의 논지에서 가장 예리한 부분은 바로 이 대목입니다. 그는 2001년 콜롬비아 칼리에서 태어나 스페인으로 이주한 건설 노동자와, 같은 2001년 스페인 산탄데르에서 태어나 하버드에서 세 번째 석사 학위를 밟고 있는 은행가 지망생을 나란히 세웁니다. 이 두 사람은 분류상 같은 Z세대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과연 같은 세대입니까?

그는 단언합니다. 아버지가 손에 굳은살이 박인 노동자인지, 수백만 달러 자산가인지에 따라, 그리고 어디에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가끔 같은 음악과 패션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그 근본적 차이를 지울 수는 없다고.

이 지적은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한국에서도 2000년생이라도 강남 8학군 출신 대기업 자녀와 지방 중소도시 자영업자 자녀의 삶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 세대론은 이 계급적 차이를 뭉개고 ‘둘 다 MZ세대’라는 하나의 라벨로 묶어버립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카파로스의 답은 명확합니다. 세대론은 사회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척하려는 시도이며, ‘계급’이라는 개념을 대체하려는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불편한 진실을 덮기 위해 더 다루기 쉬운 개념을 갖다 쓴 것입니다.

세대 갈등이라는 이름의 노인 혐오

이 대목에서 저는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는 세대론이 특정한 방향으로 무기화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의 경제적 어려움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노인 세대’가 지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논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연금에 국가 재정이 과도하게 투입된다, 노인 인구 비율이 높아지면서 사회 전체의 부담이 늘어난다, 노인들이 집을 오래 보유하고 있어 청년들이 자산을 형성하기 어렵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직접적으로 “기성세대가 청년 세대의 몫을 다 써버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카파로스도 이 현상을 정확히 포착합니다. 그는 이를 “젊은 세대의 고난을 노년 세대의 탓으로 돌리는 서글픈 논리”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사실을 지적합니다. 대형 은행과 기업의 소유주들이 노년층인 것은 사실이지만, 스페인 팬데믹 당시 요양원에서 사망한 7,291명의 희생자들 또한 노인이었다고. 즉, 노인 전체를 기득권 세력으로 묶는 것은 사실 왜곡이라는 것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입니다. 2024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약 40%에 달합니다(※ OECD 자료 기준, 최신 수치는 별도 확인 필요). 매달 30만 원 안팎의 기초연금으로 살아가는 독거노인이 수백만 명입니다. 이분들이 청년 세대의 경제적 어려움을 유발한 장본인입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닐 뿐더러,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습니다.

세대론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노년 비판은 결국 계급 문제를 세대 문제로 치환한 오류입니다. 비판의 화살은 ‘노인 세대 전체’가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소수의 기득권에게 정확히 겨누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보다 가난하다”는 구호의 함정

카파로스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반복되는 “우리는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하게 살 것이다”라는 구호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검토합니다.

그는 두 가지를 묻습니다.

첫째, ‘더 가난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출로 아파트를 사지 못하거나 새 차를 제때 바꾸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면, 그것은 삶의 일부이지 삶 전체가 아닙니다. 여성의 자율성,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 일상적인 선거, 재생에너지의 보급, 그리고 15~20년 늘어난 수명은 왜 이 계산에서 빠집니까? 물질적 기준만으로 삶의 질을 재단하는 것은 너무 좁은 시각입니다.

둘째, 설령 삶이 팍팍하다면, 그것을 부모 세대 탓으로 돌리는 것이 해결책입니까. 카파로스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만약 무언가를 원한다면, 나이를 초월해 계급과 필요에 따라 다른 이들과 연대하고, 우리 부모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밖으로 나가 싸워야 한다고.

그리고 이 말이 핵심입니다. 설령 패배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부모님 탓으로 돌리기에는 이미 충분히 어른이 되지 않았느냐고.

한국 사회에 전하는 시사점

저는 지난 20여 년간 시니어 산업의 현장에서 일해왔습니다. 그 세월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바로 “세대 갈등”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세대 간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문화적 충돌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경제 문제와 결합하면서 점점 더 날이 서지고 있습니다.

세대론의 가장 큰 문제는 집단적 단순화를 통해 개인의 책임과 구조적 문제를 동시에 지워버린다는 점입니다. ‘586세대가 문제다’, ‘노인들이 기득권을 놓지 않는다’, ‘MZ는 개인주의적이다’라는 식의 서술은 실질적인 해법을 가로막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무수히 다양한 처지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저출생, 노동 시장 불안정, 자산 불평등, 연금 지속 가능성 문제는 세대 간 갈등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구조적 설계의 실패이자, 정책적 선택의 결과입니다. 이를 ‘노인 대 청년’의 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진짜 책임을 져야 할 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일입니다.

카파로스의 말을 빌리자면, 세대론은 ‘사회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척하려는 시도’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가로질러 연대하는 것입니다. 노인과 청년이 서로를 적으로 삼는 사회는 모두가 지는 사회입니다.

경험과 연대, 그것이 진짜 자산이다

저는 1962년생입니다. 세대론적 분류로는 ‘베이비부머’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저의 삶이 같은 연도에 태어난 모든 사람과 동일합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와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 중에는 재벌 2세도 있고, 농촌에서 태어나 평생 가난과 싸운 이도 있습니다. 우리가 공유하는 것은 기껏해야 어린 시절의 흑백 TV 화면과 새마을운동 노래 정도입니다.

시니어 세대가 지닌 것은 그냥 주어진 나이가 아닙니다. 수없이 실수하고 패배하고 좌절하고 밀려났지만, 사력을 다해 노력하고 경쟁하고 애쓴 경험입니다. 실패와 회복의 반복이 쌓인 지혜입니다. 이 경험과 지혜는 세대를 불문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진짜 자산입니다. 이것을 ‘노인이 짐이 된다’는 시선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은 사회 전체의 손실입니다.

동시에, 청년 세대가 직면한 어려움을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그들의 고통은 실재합니다. 다만 그 고통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야 합니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처방을 낳습니다. 노인을 향한 분노는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카파로스가 촉구한 것처럼, 나이를 초월해 계급과 필요에 따라 연대하는 것이 해법입니다. 지원과 요구의 균형, 감정적 혐오도 무비판적 포용도 아닌 팩트에 기반한 냉철한 분석 — 이것이 우리가 세대론이라는 허구를 넘어서는 방법입니다.

탓하지 마십시오.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함께 쟁취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