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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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세 시대, 성공의 무대 뒤에 선 ‘호송대’

우리 사회는 성취의 결과를 기리는 데에는 매우 능숙합니다. 졸업과 승진, 각종 수상과 성공한 창업가를 축하하는 의식이 있고, 성과를 재는 지표도 촘촘하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성취를 가능하게 만든 관계를 알아보는 일에는 유독 서툽니다. 무대 위 조명은 한 사람만을 비추지만, 그가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쌓인 도움과 헌신은 대개 보이지 않는 곳에 남습니다. 성공을 오롯이 한 개인의 소유로 여기는 생각이야말로, 어쩌면 현대인이 가장 자주 빠지는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100세 인생(The 100-Year Life)』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린다 그라튼(Lynda Gratton) 런던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최근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The Times)에 기고한 글에서 바로 이 문제를 차분하게 짚었습니다. 그는 졸업식장에서 정작 시선이 머문 곳은 학위를 받는 졸업생이 아니라, 객석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던 부모들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부모들이 떠올린 것은 자녀의 등하굣길과 시험 성적, 힘겨웠던 대화와 크고 작은 희생, 그리고 늦은 밤의 전화였습니다. 무대를 건너는 것은 한 사람이지만, 그를 그곳에 이르게 한 것은 오랜 세월 곁을 지켜 온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라튼 교수는 심리학자 토니 안토누치(Toni Antonucci)가 제시한 ‘사회적 호송대(social convoy)’라는 개념을 빌려 이를 풀어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인생을 홀로 여행하지 않으며, 격려하는 부모와 과제를 던지는 스승, 안정감을 주는 벗과 믿어 주는 동반자, 새 길을 열어 주는 동료가 하나의 무리를 이루어 함께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수십 년을 함께하고 어떤 이는 잠시 머물다 떠나지만,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이 관계의 울타리가 사람에게 회복의 힘을 주고 성장을 돕는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가 지난해 펩시코 전 최고경영자 인드라 누이(Indra Nooyi)를 기릴 때 객석의 어머니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달라고 청했던 것도 같은 뜻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녀의 성공을 묵묵히 지켜본 이들이 있었음을 함께 기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통찰이 100세 시대에 유독 무겁게 다가오는 데에는 분명한 까닭이 있습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일하는 기간 또한 길게는 60년에 이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평생 하나의 직장, 하나의 직업, 하나의 이름표만으로 삶을 마치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람들은 새로 배우고 자리를 옮기며, 좌절에서 일어서고 다시 시작합니다. 그리고 국면이 바뀔 때마다 곁에 필요한 사람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문은 부모가 열어 주고, 한창 일할 나이에는 스승과 동료가, 뜻하지 않은 실직의 시기에는 오랜 벗이, 병을 앓을 때에는 반려자가 버팀목이 됩니다. 길어진 삶에서 이 호송대는 한 사람이 지닌 가장 값진 자산의 하나가 되는 셈입니다.

이러한 호송대는 결코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우정과 배려, 가르침을 주고받는 마음이 오랜 세월 차곡차곡 이어지며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곁을 오래 지켜 준 이들은, 대개 우리가 그 도움을 정작 필요로 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간과 정성을 들여 온 사람들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고령화를 겪어 왔습니다. 그만큼 시니어 세대가 걸어온 길은 길고, 그 곁을 지켜 온 호송대의 역사도 깊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는 품앗이와 이웃 간의 정, 대소사를 함께 치르던 공동체의 오랜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라튼 교수가 학문의 언어로 정리한 사회적 호송대는, 우리 시니어 세대가 삶으로 몸소 실천해 온 지혜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의 현실은 그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혼자 사는 가구가 빠르게 늘고, 이웃의 얼굴조차 모르고 지내는 일이 예사가 되었으며, 홀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의 소식이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관계의 울타리가 얇아진 자리에는 편리한 기술이 들어섰지만, 기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니어 세대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받아야 합니다. 오랜 세월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온 경험을 지닌 세대야말로, 얇아진 공동체의 그물을 다시 촘촘히 엮어 낼 지혜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길어진 삶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성공이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가느냐에, 그리고 우리 곁을 함께 걸어 준 이들을 얼마나 잘 알아보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화려한 무대에 당당히 서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객석에 앉아 다른 이의 걸음을 지켜보는 일이 훨씬 더 값진 순간도 있습니다. 시니어 세대가 살아온 길이 바로 그 균형을 증언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호송대는 누구였는지,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 적이 있는지, 그리고 지금 나는 또 누구의 여정을 곁에서 밀어 주고 있는지 말입니다. 앞선 세대가 뒷세대의 손을 잡아 주고, 뒷세대가 다시 그 손의 온기를 기억하는 것, 그 오래된 질서를 지켜 내는 일이야말로 100세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가장 확실한 길일 것입니다. 빠름을 재촉하는 시대일수록, 함께 걷는 걸음의 가치를 다시 새기는 냉철한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출처 및 참고 이 칼럼은 린다 그라튼(Lynda Gratton) 런던 비즈니스 스쿨 교수가 2026년 7월 13일자 영국 더 타임스(The Times) 비즈니스면 ‘코멘트’ 지면에 기고한 글의 논지를 바탕으로, 저작권 보호를 위해 원문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 그 핵심 개념과 사실관계를 재구성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사회적 호송대(social convoy)’ 개념은 심리학자 토니 안토누치(Toni Antonucci)의 이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