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을 부린 학생을 벌하지 않고 대화로 풀어내자는 교육 철학이 미국 공교육 현장에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2026년 8월 5일 자 오피니언 지면에 실린 한 통의 독자 편지는, 그 철학이 실제 교실에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현직 경험자의 목소리로 전하고 있습니다. 편지를 보낸 이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학업 성취도가 낮은 공립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교사 미셸 디지아코모 씨입니다.
주목할 대목은 그가 스스로를 평생 민주당을 지지해 온 사람이라고 밝힌 점입니다. 진보 진영이 오랫동안 옹호해 온 정책을, 그 진영에 속한 교사가 현장 경험을 근거로 비판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는 같은 신문 7월 30일 자에 실린 토니 우드리프 씨의 기고에 강하게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복원적 정의란 무엇이었나
복원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격리하거나 처벌하기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대화를 통해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자는 사법·교육 이념입니다. 학교에 적용될 때는 정학이나 퇴학 같은 징계 대신 상담과 면담을 중심에 놓습니다. 소수 인종 학생에게 징계가 편중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제도로, 취지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디지아코모 씨 역시 석사 과정에서 이 제도를 처음 접했을 때는 가능성을 보았다고 술회했습니다.
교실에서 벌어진 일
그러나 편지가 전하는 현장의 실상은 취지와 상당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가 설명한 절차는 대략 이러합니다. 한 학생이 수업 중 고성을 지르거나 다른 학생에게 물건을 던집니다. 교사는 먼저 경고를 주고, 자리를 옮기라고 지시합니다. 학생은 대개 이를 따르지 않습니다. 다음 단계로 보호자와 통화하기 위해 절차를 밟지만, 보호자와 연락이 닿지 않거나 닿더라도 문제 해결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학생을 교실 밖으로 내보내려면 복원적 정의 담당자와의 면담이 반드시 뒤따랐습니다. 교사에게는 점심시간이나 하루 한 번뿐인 수업 준비 시간을 내놓아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게다가 면담을 주도하는 담당자들은 관련 연수를 이수했을 뿐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다고 그는 전했습니다. 면담 자리에서 담당자들은 수업을 방해한 학생에게 교사의 통제가 왜 억울하게 느껴졌는지를 말해 보라고 권하곤 했다는 것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징계는 내려지지 않았고, 학생은 아무런 불이익 없이 어른의 관심과 시간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학습했습니다. 방해 행위는 오히려 더 대담해졌습니다. 정학은 매우 드물었지만 교실은 안전하지 않았고, 폭력과 괴롭힘이 잦았으며, 학업 기대치는 바닥이었습니다. 시험지에 이름만 적어 내도 절반의 점수가 주어졌다는 대목에 이르면, 성실한 학생이 치른 대가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제도가 아니라 설계가 문제였습니다
이 사례에서 읽어야 할 것은 대화와 회복이라는 이념 자체의 실패가 아닙니다. 문제는 설계에 있었습니다. 첫째, 책임을 묻는 절차가 사라졌습니다. 회복은 잘못을 인정한 다음에 오는 단계인데, 인정 없이 회복만 남으면 그것은 면죄부가 됩니다. 둘째, 비용이 엉뚱한 곳에 전가되었습니다. 질서를 어긴 학생이 아니라 이를 제지한 교사가 자기 시간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셋째, 제도를 운영할 전문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았습니다. 회복적 대화는 고도의 상담 기술을 요구하는데, 짧은 연수만으로 그 자리를 채운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물음
우리 교육 현장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2011년 학생인권조례가 도입된 이래 체벌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채울 합리적 생활지도 수단이 충분히 마련되었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 2023년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교권보호 관련 법률이 정비되었으나, 현장의 무력감이 해소되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리지 않습니다.
시니어 세대는 과거의 교실을 기억합니다. 그 시절의 권위주의적 훈육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세대가 몸으로 겪어 아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규칙이 예외 없이 적용될 때 비로소 약자가 보호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질서란 강자의 편의가 아니라 다수의 안전을 위한 장치입니다.
필요한 것은 관용이냐 처벌이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지원(Fördern)과 요구(Fordern)를 함께 세우는 일입니다. 어려운 처지의 학생에게는 상담과 복지를 두텁게 제공하되, 타인의 배울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에는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결과가 따라야 합니다. 그 균형이 무너지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쪽은 언제나 성실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아이들입니다. 교실의 질서를 지키는 일은 결국 그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는 일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