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4강전에서 잉글랜드가 아르헨티나에 1대 2로 졌습니다. 앤서니 고든의 선제골로 앞서 갔으나, 85분 엔소 페르난데스에게 동점골을 내주고 후반 추가시간에 라우타로 마르티네스의 헤딩골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두 골 모두 리오넬 메시의 크로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과 결승에서 만나고, 잉글랜드는 1966년 이후 60년째 이어진 결승 진출의 갈증을 다시 4년 뒤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주장 해리 케인이 남긴 말이 저를 오래 붙들었습니다. 그는 이번 대회에도 좋은 경기가 많았고 또 한 번 4강에 올랐으며 문턱 앞까지 왔지만 마지막 한 조각이 아직 없다는 취지로 담담히 말했습니다. 심판을 탓하지 않았고, 동료를 지목하지 않았으며, 운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토마스 투헬 감독 역시 후회는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제가 오래 지녀 온 습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우리 세대는 존경이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나이가 곧 서열이고, 경험의 두께가 곧 권위였습니다. 그래서 청년을 볼 때 우리는 대체로 세 가지 시선 중 하나를 택합니다. 걱정하거나, 훈계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고 물러서거나. 본받을 대상으로 바라보는 네 번째 시선은 좀처럼 목록에 오르지 않습니다.
두 청년이 보여준 것
지난 7월 11일 마이애미에서 열린 8강전은 잉글랜드의 연장 2대 1 승리로 끝났습니다. 두 골 모두 주드 벨링엄이 넣었고, 노르웨이는 28년 만에 밟은 무대에서 1938년과 1998년에 이은 8강으로 팀 역사상 최고 성적에 나란히 섰습니다. 엘링 홀란의 14경기 연속 득점 행진은 그가 태어난 나라 앞에서 멈췄습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의 케이티 로세인스키는 이 경기에서 승패가 아니라 두 사람의 태도에 주목했습니다. 경기 직전 대기 통로에서 벨링엄이 홀란에게 장난스럽게 발을 내민 것은 기 싸움이 아니라 오랜 친구의 농담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독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벨링엄은 2020년 7월 열일곱 살의 나이에 초기 확정액 기준 2,500만 파운드(약 507억원)에 이적했고, 영어가 능통했던 홀란이 낯선 땅에 온 소년의 곁을 지켰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부와 명성을 가졌으면서도 남성 중심 온라인 생태계를 뜻하는 매노스피어(manosphere)의 문법과 정반대의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홀란은 탈락 뒤 심경을 묻는 질문에 남 탓 대신 자기 삶에 만족하며 좋은 상태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노르웨이 대표팀 유니폼 등판에 어머니 그리 마리타 브라우트의 성을 새기고 뜁니다. 1990년대 노르웨이 7종경기 전국 챔피언이었던 어머니에게서 규율과 몸 관리를 배웠다고 그는 말해 왔습니다. 벨링엄은 어머니 데니스를 여왕이라 부르며, 어떤 감독보다 어머니가 중요했다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
왜 우리는 청년에게 배우지 못했는가
이 습관에는 구조적인 내력이 있습니다. 압축성장의 시대에는 오래 산 사람이 더 많이 아는 것이 대체로 참이었습니다. 변화가 느린 사회에서 경험은 좀처럼 낡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 경험의 반감기도 짧아집니다. 특히 감정을 다루는 법, 도움을 청하는 법, 타인의 성공을 축하하는 법에서 우리 세대의 교본은 상당 부분 낡았습니다.
여기에 착시가 겹칩니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청년은 대개 문제군으로 호명됩니다. 그러나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가 2025년 발표한 조사에서 젊은 남성의 71퍼센트는 매노스피어의 상징적 인물에게 부정적 견해를 보였고, 그중 59퍼센트는 매우 부정적이라고 답했습니다. 입소스(Ipsos)가 2025년 5월 영국 성인 2,475명을 상대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16세부터 24세까지 남성의 76퍼센트가 긍정적인 남성 롤모델이 최소 한 명은 있다고 답해, 전체 남성 평균 54퍼센트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다만 해당 연령대 응답자가 221명이었다는 점은 감안해서 읽어야 합니다.
소수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세대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다수의 조용한 성숙을 놓칩니다.
후생가외의 참뜻
공자는 논어 자한(子罕)편에서 후생가외(後生可畏), 뒤에 오는 사람이 두려워할 만하다고 했습니다. 뒷사람이 지금의 우리만 못하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느냐는 물음이 뒤따릅니다. 공야장(公冶長)편에는 불치하문(不恥下問),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청년에게 배우는 일은 전통의 파괴가 아니라 전통의 복원입니다. 우리가 지켜 온 질서의 원형이 본래 그러했습니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첫째, 졌을 때 말하는 법입니다. 케인은 남을 탓하는 대신 아직 한 조각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또래가 모인 자리에서 세상 탓과 남 탓으로 저녁이 채워지지 않았는지, 저부터 돌아봅니다. 둘째, 취약함을 드러내는 법입니다. 게러스 사우스게이트는 2025년 3월 영국 BBC 강연에서 고립된 젊은 남성들이 교사나 코치가 아니라 무정한 인플루언서에게 이끌린다고 경고하며, 지위보다 인격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셋째, 고마움을 말하는 법입니다. 벨링엄은 마이크 앞에서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거르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균형을 위하여
다만 무비판적인 청년 예찬은 경계합니다. 인용한 조사는 모두 영국과 미국의 것이며, 한국 청년의 사정이 그대로 같다고 단정할 근거는 아닙니다. 미국 연구기관 에퀴문도(Equimundo)가 2025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남성의 86퍼센트, 여성의 77퍼센트는 여전히 남자다움을 부양자라는 말로 규정했습니다. 새 흐름이 옛 흐름을 밀어낸 것이 아니라, 두 흐름이 겹쳐 있다고 보는 편이 사실에 가깝습니다.
공자의 문장에도 뒷말이 있습니다. 나이 사십, 오십이 되도록 이름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 또한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는 단서입니다. 후생가외는 젊음 자체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젊음이 쌓아 가는 것에 대한 조건부 기대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붙들어야 할 합리적 기준입니다. 나이를 이유로 존경을 강요하지도, 나이를 이유로 존경을 거두지도 않는 것입니다.
배울 것은 배우고, 가르칠 것은 가르칩니다. 다만 순서가 하나 있습니다. 먼저 배우는 쪽이 먼저 어른입니다. 존경은 나이를 따라 흐르지 않고 인격을 따라 흐른다는 사실을, 우리 세대가 먼저 인정할 때 비로소 다음 세대도 우리를 바라볼 것입니다.
출처: 4강전 경기 기록은 2026년 7월 15일 현지시간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FIFA 월드컵 준결승 아르헨티나 대 잉글랜드 경기의 보도 자료를 참조했습니다. 8강전 기록은 2026년 7월 11일 마이애미 하드록스타디움 경기 자료를, 인물과 배경은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2026년 7월 14일 자 케이티 로세인스키(Katie Rosseinsky)의 기사를 참조해 재구성했습니다. 통계는 입소스 및 조이 미디어 모던 매스큘리니티 조사(2025년 5월), 유고브 젊은 남성과 남성성 조사(2025년), 에퀴문도 스테이트 오브 아메리칸 멘 2025를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