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300여 가구 한 달 실험이 시니어의 밤에 남긴 물음
밤 열한 시가 지났는데 잠이 오지 않습니다. 손이 저절로 머리맡의 휴대전화로 갑니다. 짧은 영상 하나만 보고 자려던 생각이었는데 다음 영상이 저절로 시작되고, 손가락은 화면을 계속 밀어 올립니다. 문득 시계를 보니 한 시가 가깝습니다. 많은 시니어 독자께서 겪어보셨을 밤의 풍경일 것입니다.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분들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며 찾아오는 수면 구조의 변화, 만성질환과 복용 중인 약, 줄어든 낮 활동량 등 원인은 여러 갈래입니다. 국내 진료 통계를 인용한 보도들은 수면장애로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가 최근 수년 사이 연간 70만 명 안팎까지 늘었고 그 가운데 60대 이상이 큰 몫을 차지한다고 전해 왔습니다. 다만 이 수치는 집계 기준과 시점에 따라 차이가 있어 인용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원인을 헤아릴 때 우리가 자주 지나치는 요인이 하나 있습니다. 잠들기 직전까지 손에 쥐고 있는 화면입니다.
영국 300여 가구, 한 달의 기록
영국 정부가 현지 시각 7월 14일 공개한 연구 결과가 이 대목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영국 전역 300여 가구를 대상으로 한 달간 진행된 조사였습니다. 13세부터 17세까지의 청소년에게 세 가지 방식 가운데 하나가 적용되었습니다. 소셜 미디어 앱 하나당 하루 15분으로 사용 시간을 묶는 방식, 밤 9시부터 아침 7시까지 접속을 차단하는 야간 통금, 앱을 아예 삭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아무 제한을 두지 않은 비교 집단도 함께 관찰되었습니다.
결과는 이러했습니다. 잠자리에 드는 시각이 앞당겨졌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푹 쉬었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학교에서 집중이 잘되고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는 응답이 이어졌습니다. 부모들은 저녁 시간이 조용해졌고 각자 화면만 들여다보는 대신 가족끼리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답했습니다.
가장 강한 방식이 가장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주목할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앱을 통째로 지운 집단에서 친구를 직접 만나는 시간과 가족과 보내는 저녁 시간이 가장 크게 늘었고 집중력 개선도 두드러졌습니다. 그러나 수면 개선이 가장 꾸준히 보고된 쪽은 야간 통금이었고, 연구가 끝난 뒤에도 자발적으로 계속하겠다고 답한 가정이 가장 많았던 방식 역시 야간 통금이었습니다. 일부 부모는 밤 9시 차단이 2주 만에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신중히 읽어야 합니다. 영국 정부는 이 연구가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이 아니라고 보고서에 스스로 밝혔습니다. 표본이 비교적 작고 참여자의 자기 보고에 기댄 질적 조사이므로 결정적 근거가 아니라 탐색적 자료로 읽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규칙이 온전히 지켜지지 않은 사례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블릿이나 노트북, 쓰지 않던 예전 휴대전화로 갈아타는 우회가 가장 흔했습니다. 바스 스파 대학교(Bath Spa University)의 피트 에첼스(Pete Etchells) 교수 역시 이번 결과에 지나치게 기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 칼럼이 영국의 실험을 근거로 무엇도 단정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자동 재생과 무한 스크롤은 나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발표에서 반드시 가져와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영국 정부가 16세와 17세 이용자를 위해 사업자에게 꺼두라고 요구한 두 가지 기능입니다. 자동 재생(auto-play)과 무한 스크롤(infinite scroll)입니다.
한 편만 보려고 켰는데 다음 영상이 저절로 이어지는 구조, 아래로 내려도 바닥이 나오지 않는 구조입니다. 이 두 기능은 실수로 생긴 것이 아니라 이용자를 화면 앞에 오래 머물게 하려고 설계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설계는 나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열여섯 살의 손가락과 예순여섯 살의 손가락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잠이 오지 않아 켠 화면이 다시 잠을 밀어내는 일이 벌어집니다. 잠이 오지 않던 것이 원인이었는데 어느 틈에 화면이 원인의 자리에 들어서 있습니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설계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냉정하게 확인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영국 정부의 규제는 청소년만 보호합니다. 성인에게는 아무도 자동 재생을 꺼주지 않습니다. 시니어 세대의 밤을 대신 지켜줄 규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꺼야 합니다.
디톡스는 끊는 일이 아니라 시간대를 정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디톡스를 권합니다. 다만 무언가를 끊고 없애는 결단을 권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국 실험이 알려준 교훈이 바로 그것입니다. 가장 엄격한 방식이 아니라 가장 지키기 쉬운 방식이 살아남았습니다.
첫째, 오늘 저녁 설정 화면을 한 번 열어 자동 재생 기능을 꺼두시기 바랍니다. 이 한 번의 조작만으로 화면 앞에 머무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둘째, 잠들기 한 시간 전에는 화면을 내려놓는 규칙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충전기를 침실이 아니라 거실에 두는 방법이 의외로 효과가 큽니다. 완전히 끊겠다는 결심보다 시간대를 정하는 작은 규칙이 오래갑니다.
셋째, 규칙의 대상을 손주로만 삼지 마십시오. 영국 부모들이 보고한 가장 큰 변화는 아이의 수면이 아니라 저녁 시간의 분위기였습니다. 조부모가 먼저 화면을 내려놓는 저녁 한 시간은 어떤 잔소리보다 설득력이 있습니다.
밤은 잠의 시간이라는 오래된 질서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고 해가 뜨면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오래 지켜온 생활의 질서였습니다. 이 질서를 흔든 것은 우리의 게으름이 아니라 밤을 낮처럼 밝히는 화면이었습니다. 기술을 배척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니어 세대가 스마트폰을 익히고 활용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다만 도구에는 쓰는 시간과 쓰지 않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 경계를 스스로 정하는 것이 절제이며, 절제는 새로운 유행이 아니라 우리 세대가 이미 알고 있던 오래된 지혜입니다.
국가가 청소년의 밤을 지키겠다고 나선 것은 안전의 문제로서 마땅한 일입니다. 근거가 탐색적이라면 그 한계도 함께 말해야 한다는 것 역시 마땅한 일입니다. 그리고 규제가 미치지 않는 성인의 밤은 결국 각자의 절제로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저녁, 자동 재생부터 꺼보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당부드립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화면 탓으로만 돌리지는 마십시오. 화면 사용 시간과 마음 건강의 관계는 학계에서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영역입니다. 잠이 오래 오지 않거나, 우울감이 이어지거나, 스스로 조절이 어렵다고 느껴지신다면 정신건강의학과나 가까운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전문가와 상담해 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