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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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최근 발표된 새로운 이민 정책안이 현지 의료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정부가 발표한 정착 자격 요건 강화로 인해 영국에 있는 외국인 간호사 약 5만 명이 영국을 떠날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영국 보건의료 체계의 안정성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은 단순히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습니다. 특히 의료 인력 부족이 만성화된 한국에서는 이번 사안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번 정책의 핵심은 영국에서 일정 기간 합법적으로 체류한 외국인에게 부여되던 ‘무기한 체류 자격(ILR)’의 조건을 기존 5년에서 최대 10년까지 연장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영주권에 해당하는 중요한 지위로, 의료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간호사·의료인들에게는 미래 설계의 기초가 되는 제도입니다. 문제는 이 조치가 영국 내 국제교육 배경 간호사 약 20만 명, 전체 간호 인력의 4분의 1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영국 의료 현장을 지탱했던 간호사 상당수가 아직 ILR을 받지 못했으며, 이들에게 추가 5년의 대기 기간은 삶의 기반을 흔드는 수준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국 왕립간호대학(RCN)의 조사에서 ILR이 없는 간호사의 60%가 “이번 변화가 영국에 남겠다는 계획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고, 응답자의 상당수는 “장기적으로 영국을 떠나는 것이 현실적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식은 영국 사회뿐 아니라 고령화로 의료 인력 부족이 심화된 한국에도 중요한 교훈을 제시합니다. 한국 역시 외국인 간호 인력 유입에 대한 논의가 늘어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세계적 수준의 인력 경쟁 속에서 의료 인력 확보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간호 인력 문제는 오래전부터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왔습니다. 특히 시니어층 입장에서 의료 인력 부족은 단순한 서비스 품질 문제를 넘어, 건강 유지의 안정성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에서는 노인의료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으나, 이를 담당할 의료 인력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지방 중소도시 또는 농촌 지역에서는 간호사 부족 현상이 더욱 심각합니다.

영국의 사례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의료 인력이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공공적 자산이라는 인식이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영국 간호계는 정부에 “이민 정책을 정치적 여론전이나 단기적 인기 정책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고숙련 인력을 ‘정치적 축구공’처럼 다루는 순간,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사회 전체에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최근 외국인 간호조무사, 돌봄 인력, 요양보호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외국인 인력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단순히 ‘대체 노동력’으로 바라보기보다, 이민·정착·교육·자격인증 등 종합적인 정책 체계 속에서 다루어야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 아무리 뛰어난 의료 체계를 갖추고 있더라도 인력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시스템 전체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정책 설계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예측 가능성”입니다. 외국인 인력에게 장기 체류·정착과 관련된 조건이 수시로 변경되면, 그 사회는 외국인 전문 인력에게 매력적인 국가가 되지 못합니다. 영국 간호사 중 상당수가 “정착 조건이 10년이었다면 영국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한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한국 역시 외국인 고숙련 인재 비자 제도, 전문직 영주권 요건 등에서 보다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어야 국제 인재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교훈은 “기여에 대한 보상”입니다. 영국에서 팬데믹 당시 의료 현장을 지탱했던 외국인 간호사들은 영웅에 가까운 역할을 했음에도, 팬데믹 이후 불이익을 받는 구조가 마련되자 큰 배신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노동력 기반의 이민 정책에서 흔히 나타나는 문제지만, 한국에서도 앞으로 외국인 의료 인력 유입이 증가한다면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시니어 관점에서 이번 문제를 바라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우리 사회의 고령층은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의료 수요는 이미 공급을 넘어서는 단계에 직면했습니다. 외국인 인력은 한국 사회의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축이 될 수 있으며, 오히려 적극적인 정착 지원과 사회적 통합 정책이 필요합니다. 특히 지역 의료 격차가 심각한 지방에서는 외국인 의료 인력 없이 체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국의 이민 정책 논란은 단순한 해외 뉴스가 아닙니다. 의료 인력 확보 경쟁이 세계적으로 치열해지고, 인구 구조 변화가 불러올 사회적 충격이 커지는 시대에, 한국도 반드시 참고해야 할 거울입니다. 의료 인력은 국가가 지켜야 할 필수 자원이자,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핵심 요소입니다. 장기적 안목과 안정적인 제도 설계를 통해, 누구나 나이가 들어도 안전하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