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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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이혼은 성인 자녀와 가족 전체가 함께 흔들립니다

한 통의 편지가 제기한 물음

미국 뉴욕타임스가 2026년 7월 22일 수요일 자 A23면 오피니언 섹션에 실은 독자 편지 한 통이, 시니어 세대의 이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습니다. 편지를 보낸 이는 미시간주 앤아버에 사는 웬디 피셔 하우스(Wendy Fisher House)로, 노년기 이혼이 성인 자녀와 가족에게 남기는 영향을 다룬 저서를 낸 인물입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같은 신문이 7월 2일 목요일 자 스타일 섹션에 게재한 기사였습니다. 해당 기사는 시니어 세대가 이름만 남은 결혼 생활에 더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는 흐름을 다루었습니다.

편지의 요지는 간명합니다. 결혼 생활이 형식만 남은 것이었든 서로에게 해로운 것이었든, 노년기의 이혼은 부부 두 사람의 문제로 끝나지 않으며 가족이라는 체계 전체를 지진처럼 흔든다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었다고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편지의 필자는 열여덟 살부터 쉰 살, 그 이상에 이르는 성인 자녀들이 부모의 이혼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사회에 갓 나선 자녀들은 졸업과 결혼, 출산이라는 인생의 이정표를 지나는 동안 여전히 부모의 지원에 적지 않게 기대고 있습니다. 중년에 접어든 자녀들은 자기 가정과 직장에서 짊어진 책임이 가장 무거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으며, 이미 조부모가 된 부모에게 손자녀 돌봄을 비롯한 도움을 청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합니다.

부모가 갈라서는 순간, 이들 자녀의 관심사는 다른 곳으로 옮겨 갑니다. 두 분이 각각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홀로 설 수 있을 만큼의 시간과 자원을 가지고 계신가. 신체적 또는 인지적 어려움은 없으신가. 재혼이 이루어질 경우 확대된 가족의 재정 구조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편지는 이러한 물음들이 고스란히 자녀 세대의 어깨 위에 얹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혼의 원인과 당사자가 겪는 어려움에만 시선을 좁히면 가족 관계의 소원함, 나아가 단절까지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 시기에 누구에게도 또 하나의 상실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편지가 남긴 마지막 문장입니다.

왜 그동안 간과되어 왔는가

구조적으로 보면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는 이혼에서 보호해야 할 대상을 미성년 자녀로 상정합니다. 양육권과 양육비, 면접교섭은 모두 미성년을 전제로 설계된 장치입니다. 성인 자녀는 이미 독립한 존재로 간주되어 제도의 시야 밖에 놓입니다. 그러나 가족은 부품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도는 하나의 체계입니다. 한 축이 어긋나면 그 진동은 세대를 건너 전달됩니다.

수명이 길어진 점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예순에 갈라선 부부에게는 이후 이삼십 년의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였던 살림이 둘로 나뉘면서 주거비와 생활비, 의료비가 이중으로 발생하고, 그 부담의 일부는 결국 자녀 세대로 흘러갑니다. 명절과 결혼식, 돌잔치처럼 가족이 모여야 하는 자리는 매번 조율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묵은 갈등이 되살아나는 무대가 되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

한국의 사정은 오히려 더 무겁습니다. 통계청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혼인 지속 기간 20년 이상 부부의 이혼, 이른바 황혼 이혼(gray divorce)은 최근 수년간 전체 이혼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여기에 우리 특유의 조건이 겹칩니다. 손자녀 돌봄의 상당 부분을 조부모가 감당해 온 관행, 부모 부양에 대한 도덕적 기대, 상속을 둘러싼 형제간 이해관계가 그것입니다. 부모의 이혼은 이 세 축을 동시에 흔듭니다. 국민연금의 분할연금처럼 혼인 기간 중 형성된 노후 소득을 나누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으나, 이는 소득의 일부를 조정할 뿐 두 사람이 각자의 생활을 온전히 꾸릴 재원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인내가 답은 아니되, 자기결정만도 답은 아닙니다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폭력과 학대, 회복이 불가능한 신뢰의 파탄 앞에서 분리는 마땅한 선택이며 늦출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이혼을 오로지 개인의 자기결정 문제로만 환원하는 요즘의 화법에는 빠진 것이 있습니다. 가족은 계약의 당사자만으로 구성되지 않으며, 그 결정의 비용을 함께 치르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필요한 것은 감정에 기댄 호소가 아니라 합리적인 절차입니다. 결정에 앞서 두 사람 각자의 노후 재정을 냉정하게 계산하고, 건강 상태와 돌봄 필요를 점검하며, 성인 자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왕래와 가족 행사의 원칙을 미리 정해 두는 일입니다. 가족상담과 법률상담을 거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는 이혼을 막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갈라선 뒤에도 관계가 완전히 끊기지 않도록 붙드는 장치입니다.

사회는 홀로 서게 된 시니어의 주거와 소득, 돌봄을 뒷받침해야 하고, 당사자는 남은 삶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각오와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자녀 세대에게는 부모의 선택을 존중하되 감당할 수 있는 몫과 그렇지 않은 몫을 분별할 권리가 있습니다. 인생의 후반부에 내리는 결정일수록, 그 결정이 가닿는 사람들의 얼굴을 먼저 헤아리는 일이 순서일 것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