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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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 부담을 덜어 주겠다는 약속은 어느 나라에서나 표심을 움직이는 강력한 한마디입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실제 시행에 이르기까지는 정치적 결단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최근 일본의 사례가 새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식료품에 매기는 세금을 한시적으로 면제하겠다던 일본 정부의 공약이 뜻밖에도 전국 매장에 깔린 계산대 시스템 앞에서 발이 묶였기 때문입니다.

인기 공약을 가로막은 뜻밖의 장애물

현재 일본은 식료품에 8%의 소비세(消費税)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 세율을 2년간 한시적으로 0%까지 낮추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문제는 숫자 하나를 바꾸는 일이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는 데 있었습니다. 세율을 실제로 0%로 적용하려면 대형 유통 체인의 계산 시스템, 이른바 포스(POS) 단말기를 통째로 손봐야 한다는 사정이 드러난 것입니다. 시스템 업계에서는 세율을 새로 설정해 전국 매장에 일괄 반영하는 작업에만 최대 1년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봅니다. 매장마다 단말기와 정산 체계가 제각각이어서, 이를 모두 맞추는 데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계산대 탓”으로 돌린 총리, 그리고 시간표 압박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가 이끄는 자유민주당(自由民主党)은 지난 2월 8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식료품 소비세를 2년간 면제하겠다는 공약을 앞세워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물가 상승에 지친 유권자들에게 이 약속은 적지 않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공약대로라면 늦어도 내년 3월까지는 인하를 시작해야 합니다. 야당이 구체적인 시행 시간표를 내놓으라고 압박하자, 총리는 지연의 책임을 계산대 시스템 탓으로 돌렸습니다. 정작 정책의 발목을 잡은 것이 정치적 결단이 아니라 매장의 단말기였다는, 다소 머쓱한 장면이 연출된 셈입니다.

‘1% 절충안’과 ‘세액공제 전환론’, 그 뒤에 놓인 5조 엔

해법을 둘러싼 논의도 여러 갈래로 나뉩니다. 한쪽에서는 세율을 아예 0%로 만드는 대신 1%만 남겨 두자는 절충안을 제시합니다. 세율이 완전히 사라지면 시스템을 새로 짜야 하지만, 1%라도 남겨 두면 기존 체계를 비교적 수월하게 손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인하안 자체를 접고, 일정 소득 이하 가구에 세금을 돌려주는 환급형 세액공제(refundable tax credit) 방식으로 방향을 틀자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이 모든 논의의 바탕에는 만만치 않은 재정 부담이 자리합니다. 식료품 소비세를 2년간 면제할 경우 일본 정부가 포기해야 하는 세수는 한 해에만 약 5조 엔(약 48조 원, 2026년 5월 말 100엔당 약 966원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미 국가 부채가 무거운 일본의 재정 형편을 고려하면 결코 가벼운 규모가 아닙니다. 인기 있는 공약이 현실의 행정·기술 절차와 재정 여건 앞에서 어떻게 미뤄질 수 있는지를, 이번 사례가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한국의 시니어가 새겨 둘 만한 대목

이번 소식은 이웃 나라의 이야기이지만, 고정된 연금 소득으로 생활하시는 시니어에게 식료품 가격과 세금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같은 장바구니라도 세금이 어떻게 붙느냐에 따라 한 달 생활비가 적지 않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쌀과 채소, 과일, 손질하지 않은 정육처럼 가공하지 않은 기본 식료품에 대해서는 부가가치세(VAT)를 매기지 않는 면세 제도를 이미 두고 있습니다.

반면 가공식품이나 외식에는 10%의 부가가치세가 붙습니다. 같은 재료라도 가공 정도에 따라 체감 가격이 달라질 수 있으니, 직접 손질해 드실 수 있는 식재료를 활용하시면 알뜰한 장보기에 도움이 됩니다. 세금이나 연말정산, 각종 공제 제도가 궁금하실 때는 국세청 국세상담센터(국번 없이 126)에서 무료로 안내를 받으실 수 있고, 생활비 부담이 크게 느껴지신다면 거주지 행정복지센터나 보건복지상담센터(국번 없이 129)를 통해 기초연금과 에너지바우처 등 받으실 수 있는 복지 혜택을 함께 점검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약속은 실현될 수 있어야 약속입니다

이번 일이 우리에게 건네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세금을 깎아 주겠다는 약속이든 복지를 늘리겠다는 다짐이든,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시행할 수 있는 수단과 감당할 수 있는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움이 절실한 이들에게는 두텁게 지원하되, 그 재원과 절차만큼은 냉정하게 따져 보는 균형이야말로 책임 있는 정책의 출발점이라 하겠습니다.

시니어 세대께서는 이미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눈앞의 큰 숫자에 마음이 흔들리기보다, 그것이 정말 지켜질 수 있는 약속인지 차분히 헤아리는 지혜 말입니다. 제도의 속내를 정확히 이해하고 침착하게 활용하는 것, 그것이 흔들리는 물가의 시대를 건너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