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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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까지 짧은 영상 응용 프로그램을 손가락으로 넘기고 또 넘기는 한 청년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초현실적인 그림이 알 수 없는 외국어 억양으로 무의미한 말을 늘어놓고, 곧이어 생산성을 조롱하는 듯한 짧은 영상이 이어집니다. 댓글창에는 해골 모양 그림 문자와 함께 “브레인 롯(brain rot)의 정점”이라는 표현이 줄지어 올라옵니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뇌가 썩어 가는 듯한 상태’에 가까운 이 단어가, 지금 세계 청년 세대의 일상을 압축한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해외 사례에 비춰 본 새로운 해석

‘브레인 롯’은 영국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2024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뒤 폭발적으로 확산된 신조어입니다. 지난 5월 24일 자 미국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 16면 독자 투고란에는 그리스 아테네에 거주하는 한 독자가 이 현상에 대한 흥미로운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그는 비평가들이 ‘인지적 쇠퇴’와 ‘정신적 안개’라고 한탄해 온 이 흐름이 사실은 무의미한 소비가 아니라, 모든 것을 최적화하려는 동시대 문화에 대한 청년들의 유쾌한 거부, 즉 일종의 저항 문화에 가깝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끝없는 진지함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함께 내쉬는 한숨이라는 것입니다.

거대한 피로, 그 구조적 원인

이 독자가 사용한 ‘거대한 피로(great fatigue)’라는 표현은 의미심장합니다. 끝없이 늘어나는 구독 서비스 청구서, 사용자의 시선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작동하는 알고리즘, 그리고 짓누르는 경제적 부담이 청년 세대의 일상을 포위하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모든 것이 ‘참여(engagement)’ 지표로 환산되고 측정되는 시대에, 알파 세대와 Z세대, 그리고 젊은 밀레니얼 세대가 의도적으로 무의미한 짧은 영상을 소비하고 공유하는 행위는 일종의 반(反)생산적 반란의 성격을 띤다는 해석입니다.

비슷한 흐름은 동아시아에서도 관찰됩니다. 압박감 대신 낮잠을 택하겠다는 중국 청년들의 이른바 ‘쥐띠 인간(rat people)’ 현상, 그리고 새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Z세대의 ‘쇼핑 안 하기 챌린지(no buy challenge)’ 역시 같은 뿌리에서 자란 반(反)분투의 흐름이라고 워싱턴 포스트 독자는 지적하였습니다.

한국 사회가 마주한 질문

한국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청년 실업과 주거 비용, 결혼과 출산을 둘러싼 부담은 이미 수년째 사회 전체의 화두입니다. 시니어 세대가 평생 몸으로 익혀 온 근면과 성실, 그리고 한 직장에서 오랜 시간 견뎌 내는 인내의 덕목은 분명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토대였습니다. 다만 그 덕목이 청년 세대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기에는, 그들이 마주한 노동 시장과 디지털 환경이 이전 세대의 그것과는 너무도 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히 짚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농담을 공유하며 잠시 무거움을 가볍게 만드는 행위가 정신적 휴식의 한 형태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피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워싱턴 포스트의 해당 독자 또한 어리석음 그 자체가 피로를 풀어 주지는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정하였습니다. 잠시 견디고 비웃고 함께 나누는 의식(儀式)일 뿐, 해법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지원과 요구, 그 균형의 회복

시니어 세대가 청년들의 ‘브레인 롯’ 현상을 마주할 때 필요한 태도는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그들이 견디고 있는 사회적 피로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따뜻하게 지원(Fördern)하는 일이며, 둘째는 그렇다고 해서 책임과 자기 절제라는 보편 가치까지 면제될 수는 없다는 점을 단단히 요구(Fordern)하는 일입니다.

조롱과 풍자로 한 시기를 견디는 것은 가능하나, 한 세대의 삶 전체를 그것에 의지하여 끌어갈 수는 없습니다. 청년의 외침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되, 동시에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지켜 온 안정과 질서의 가치까지 함께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일, 그것이 오늘의 시니어 세대에게 남겨진 책임이라 하겠습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