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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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 침묵하던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 두루마리를 깨운 기술, 그 진짜 쓸모가 일상에 닿지 않는 까닭을 생각합니다

요즈음 인공지능(AI)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인공지능을 처음 마주하는 자리는 대개 가벼운 놀이의 형태입니다. 내 사진을 유명 만화가의 그림체로 바꾸어 주고, 몇 마디 말로 그럴듯한 그림 한 장을 만들어 냅니다. 신기하고 즐겁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듭니다. 수많은 인재와 천문학적인 자본이 쏟아져 들어간 이 기술이 겨우 사진을 만화풍으로 바꾸는 일에 머문다면, 그것은 너무도 아쉬운 투자가 아니겠습니까. 마침 그 물음에 조용히 답을 건네는 사건이 멀리 이탈리아에서 전해졌습니다.

지난 6월 25일, 베수비오 화산이 멀리 바라다보이는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도서관에서 놀라운 발표가 있었습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며 고대 도시 헤르쿨라네움을 잿더미 아래 묻었을 때, 한 도서관의 두루마리들도 새카맣게 타버린 채 함께 봉인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PHerc 1667’이라 불리는 파피루스는 손으로 펼치는 순간 바스러질 만큼 약했습니다. 실제로 과거 두 차례에 걸쳐 직접 펼쳐 보려던 시도는 두루마리를 부수고 동강내는 상처만 남겼습니다.

이번에는 누구도 그것을 펴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영국과 프랑스의 대형 방사광 가속기로 두루마리 속을 고해상도 엑스선으로 입체 촬영한 뒤, 그 영상을 컴퓨터로 한 겹씩 가상으로 펼쳤습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파피루스 섬유의 미세한 결 차이를 짚어 어디에 잉크가 묻어 있는지를 가려냈습니다. 그렇게 2천 년 만에 약 스무 단에 이르는 글자가 되살아났고, 학자들은 그것이 윤리와 인간의 행동을 논한 스토아 철학 계열의 오래된 저작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둘 만합니다. 인공지능이 혼자 글을 읽어 준 것이 아닙니다. 거의 사라진 잉크의 흔적을 또렷이 드러낸 것은 기계였지만, 그 희미한 글자를 옮겨 적고 뜻을 풀어낸 것은 평생을 파피루스 연구에 바친 학자들이었습니다. 이 모든 성과는 탄화된 두루마리를 읽어내기 위해 2023년 시작된 국제 공모전 베수비오 챌린지(Vesuvius Challenge)의 결실입니다. 주최 측은 앞으로 1년 안에 또 다른 두루마리를 통째로 읽어낼 팀에게 100만 달러(약 15억 4천만 원, 환율은 6월 26일 무렵 미화 1달러당 약 1,540원 적용)의 상금을 내걸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남습니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힘만으로는 풀 수 없던 오랜 수수께끼를 풀어낸다는 이 놀라운 소식이, 어찌하여 우리 일반인의 가슴에는 그리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 것일까요. 까닭은 몇 가지로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진정으로 값진 일은 느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두루마리 하나를 읽어내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친 기다림과 거대한 실험 장비, 그리고 고전을 평생 연구한 학자들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반면 사진을 만화로 바꾸는 일은 순식간에, 눈앞에서, 누구나 손쉽게 나누어 볼 수 있는 형태로 펼쳐집니다. 애초에 사람의 눈길을 끌고 빠르게 퍼지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시장의 셈법이 작용합니다. 당장 돈이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쪽으로 빛이 모이는 반면, 깊은 지식의 영역은 좀처럼 화제에 오르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혜택이 시간으로도 분야로도 우리 일상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습니다. 2천 년 전의 철학서를 되살리는 일이, 오늘 아침 장바구니를 든 우리의 살림살이에 곧바로 닿지는 않습니다. 미제를 풀어내는 인공지능의 약속이 멀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것이 덜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 보람이 조용하고 더디며 일상에서 비켜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인공지능은 흔히 두 얼굴로 그려집니다. 한쪽에서는 한낱 장난감처럼, 다른 한쪽에서는 일자리를 빼앗는 위협처럼 다루어집니다. 그러나 두 시선 모두 정작 중요한 가운데를 놓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참된 쓸모는, 사라진 지식을 되살리고 질병을 진단하며 소외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자리에 있습니다.

특히 시니어 세대에게 이 점은 각별합니다. 2천 년 전 두루마리를 읽어낸 그 기술은, 알아보기 힘든 약 봉투의 깨알 글씨를 소리 내어 읽어 주고 낯선 외국어를 옮겨 주며 멀리 있는 자녀와 영상으로 잇대어 주는 일에도 똑같이 쓰일 수 있습니다. 정작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쓸모로부터 누군가가 밀려나는 디지털 격차입니다. 인공지능이 낯설게 느껴지신다면, 한 박자 멈추어 배움의 문을 두드려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두루마리가 기술이 무르익을 때를 기다렸듯,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익히는 일에도 그만한 값어치가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가 우리에게 일러 주는 것은, 인공지능은 요술 방망이도 아니고 한낱 장난감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침묵하던 두루마리는 기계와 학자가 손을 맞잡았을 때 비로소 입을 열었습니다. 기술은 사람의 안목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넓혀 주는 것입니다. 빠른 것이 늘 좋은 것은 아니며, 화려한 것이 늘 값진 것도 아닙니다. 오래 남을 것을 묵묵히 쌓아 온 시니어 세대의 살아온 이치가, 이 새로운 도구를 어떻게 부려야 할지를 가만히 일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강력한 도구를 향해 지원과 요구를 함께 건네야 합니다. 사람의 오랜 문제를 푸는 데 쓰이도록 든든히 뒷받침하되, 한낱 눈요기에 머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요구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인공지능에게 물어야 할 것은 “오늘 우리를 무엇으로 즐겁게 해 줄 것인가”가 아니라, “오래 침묵해 온 어떤 문제를 이제야 비로소 함께 풀어낼 수 있는가”입니다. 2천 년 만에 다시 입을 연 두루마리가, 그 물음을 우리 앞에 조용히 내려놓았습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