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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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의 취업 제안이 인생을 바꿉니다

프랑스 일간지 르파리지앵이 지난 8월 13일 국제면에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사이버 보안 학위를 가진 33세의 브라질 청년은 2024년 1월 러시아 국영 방산기업의 채용 제안을 받고 현지로 향했습니다. 도착해 보니 기다리고 있던 것은 러시아어로 작성된 서류 뭉치였고, 통역인은 통상적인 입사 절차라고 안심시켰다고 합니다. 몇 차례 서명을 마친 그가 실제로 체결한 것은 1년짜리 군 입대 계약이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전선에 배치되었고, 부상을 입은 뒤 2024년 6월 우크라이나군에 투항해 전쟁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 사례는 우연한 불운이 아닙니다. 모병 실태를 추적하는 우크라이나 시민단체 관계자는 건설·경비·창고·운송 같은 고임금 민간 일자리를 미끼로 사람을 모은 뒤, 국방부 소속으로 일하게 된다는 정도만 알리고 실제 전투 투입 사실은 숨기는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며칠이면 실상이 드러납니다. 민간 계약은 입대로 바뀌고 여권은 압수되며, 편도 항공권은 참호로 이어집니다.

숫자가 말하는 규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4년에 걸친 전쟁으로 러시아 측 군사적 손실을 사망과 부상을 합쳐 약 120만 명으로 추산합니다. 국제인권연맹이 발표한 조사에서는 2022년 2월 이후 130개국 이상에서 최소 2만 7천 명의 외국인이 모집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북한이 파병한 1만 4천 명 규모의 병력이 더해집니다. 아프리카 35개국 출신 신병 1,417명을 확인한 한 조사 단체는 그 가운데 300명 이상의 사망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조사에 참여한 연구자는 이들 대부분이 형식적인 훈련만 받은 뒤 투입되어 평균 6개월을 넘기지 못한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이 수치들은 전시 상황에서 수집된 것으로, 기관별 집계 기준이 달라 확정된 통계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제시되는 대가는 월 2,000달러에서 2,500달러(약 276만 원에서 약 345만 원)입니다. 스리랑카 평균 임금의 열 배에 이르는 금액이며, 여기에 러시아 여권 발급이 덧붙기도 합니다. 모집 공고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퍼지고, 현지 알선 조직이 이를 중계합니다. 러시아 내에서 단속에 걸린 불법 체류자에게 구금이나 추방 대신 입대 계약을 제시하는 방식도 확인되었습니다.

가난이 만든 통로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이 현상의 핵심 동기를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로 짚었습니다. 문제는 그 기대를 파고드는 구조입니다. 본국의 일자리 부족, 정보 격차, 계약서 언어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처지가 겹치면 개인의 판단력은 거의 작동하지 못합니다. 러시아 당국은 관여를 부인하고 있으나, 조사 단체는 정보기관의 승인 흔적이 담긴 외국인 전투원 명단을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역시 70개국 약 1만 명의 외국인이 복무 중이라고 밝혔지만, 정식 절차를 거친 자원 의용군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릅니다.

각국 사법 당국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페루 검찰은 지난 5월 인신매매 혐의 수사에 착수했고, 담당 변호인은 최소 800명의 자국민이 복무 중인 것으로 추정합니다. 볼리비아는 7월에 수사를 열었으며, 인도와 네팔, 스리랑카는 2024년부터 관련 절차를 진행해 왔습니다.

우리 사회가 읽어야 할 대목

이 문제를 먼 나라 이야기로 넘기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고수익을 내건 해외 취업 알선의 구조는 최근 몇 해 동안 우리 사회가 겪은 동남아시아 취업 사기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항공권과 숙소를 대신 마련해 주고, 현지 도착 직후 여권을 회수하며, 언어를 알 수 없는 서류에 서명을 요구하는 절차는 국경만 다를 뿐 동일한 수법입니다. 표적이 되는 대상도 취업 준비 세대에서 은퇴 후 재취업을 찾는 연령대로 넓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시니어 세대의 역할이 있습니다. 오랜 사회생활을 통해 계약서의 무게와 조건이 지나치게 좋은 제안의 뒷면을 몸으로 익힌 세대입니다. 자녀와 손주 세대가 해외 일자리를 앞두고 있을 때 여권 보관과 계약서 원문 확인, 현지 공관 연락처 확보를 짚어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경험을 가진 어른입니다. 이는 간섭이 아니라 안전망의 한 축입니다.

원칙이 사람을 지킵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개인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집니다. 이 두 원칙은 대립하지 않습니다. 다만 정보가 차단되고 서류를 읽을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서명은 선택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국제 사회가 이 문제를 인신매매의 관점에서 다루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시신도 사망 진단서도 없이 소식이 끊긴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사연은 어느 나라 국민인지와 무관하게 같은 무게를 갖습니다.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질서는 국경을 지키는 일에서 끝나지 않고, 국경을 넘는 사람을 속이지 못하게 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지원해야 할 것은 지원하고 요구해야 할 것은 요구하는 균형, 그 원칙이 결국 사람을 지킵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 본 칼럼은 르파리지앵(Le Parisien) 2026년 8월 13일 자 국제면 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며, 원문의 직접 인용 없이 사실관계를 정리하였습니다.

러시아 측 군사적 손실 규모, 외국인 모집 인원, 아프리카 출신 사망자 수 등은 각 기관의 추정치로서 독립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수치입니다. 해외 취업 관련 피해 상담 및 재외국민 보호 관련 연락처는 게재 전 외교부 영사콜센터 안내 기준으로 확인 후 병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