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시골 마을에 거주하는 저소득 가구의 절반 이상이 신선한 과일과 채소 같은 건강한 식품을 안정적으로 구하기 어려운 환경, 이른바 식품 사막(Food Desert)에 놓여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지역 상점이 잇따라 문을 닫고 대중교통마저 부실해진 농촌이 빈곤 가구에게 굶주림과 생계비 압박을 더하는 환경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는 단순히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인구 감소와 마을 상점 폐업이 가속화되고 있는 우리 농어촌 시니어에게도 그대로 던져진 경고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도시보다 농촌이 더 위태로운 역설
영국 셰필드 대학교(University of Sheffield) 연구진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연 소득 4만 파운드(한화 약 8,080만원) 미만인 1만 4,158가구를 조사한 결과, 농촌 가구의 절반 이상이 저렴하고 영양가 있는 식품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동일 소득 수준의 도시 빈곤 가구 중 신선식품을 살 수 있는 상점까지 걸어서 20분 이상 걸리는 비율은 7%에 그쳤지만, 농촌 가구에서는 그 비율이 52.5%까지 치솟았습니다. 영국 전체 가구의 약 8분의 1이 올해 2월 기준 식품 불안정(Food Insecurity)을 경험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실까지 함께 놓고 보면, 농촌이라는 지리적 조건이 빈곤을 한층 무겁게 누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난이 아닌 환경이 만든 차별
연구를 주도한 식품 안보 전문가 메건 블레이크(Megan Blake) 박사는 농촌 가구의 식품 문제가 단순한 소득 격차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지리적 장벽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고 분석하였습니다. 박사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주변에 상점이 없는 식품 사막에 거주하는 가구는 도보 5분 거리에 저가 슈퍼마켓을 둔 동일 소득대 가구에 비해 식품 불안정 위험이 22배 이상 높았습니다. 정작 영국의 식량이 생산되는 농촌 지역이 가장 굶주리기 쉬운 환경으로 변질되어 버린 역설입니다.
마을 상점이 잇따라 문을 닫고 대중교통이 빈약해진 가운데, 대형 유통망은 도시 중심으로만 짜여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교외의 캐슬밀크(Castlemilk) 주민 1만 5,000명이 신선식품 공급을 위해 수년간 대형마트 유치 운동을 벌였으나 끝내 무산된 사례는 이 구조적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영국 식품 가격은 2021년 이후 평균 50%가량 올랐지만, 코츠월드 남부 푸드뱅크(South Cotswolds Food Bank)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식품 사막 지역의 마을 편의점에서 같은 장바구니를 구입할 경우 도시 저가 대형마트보다 최대 62%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욱 의미심장한 점은, 정규직으로 일하는 저소득 가구가 복지 수당에만 의존하는 가구보다 빈곤선 위에 있을 가능성은 더 높았지만, 두 집단이 겪는 식품 불안정 수준은 비슷했다는 분석입니다.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식품 접근성 문제가 자동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농어촌 시니어에게 던지는 질문
이 문제는 우리 사회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국 농어촌은 이미 시니어 인구 비중이 절반에 육박하는 지역이 적지 않고, 마을 슈퍼와 5일장이 사라지면서 신선한 채소와 단백질 식품을 구하기 어려운 마을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자동차 운전이 어려운 시니어에게 가장 가까운 농협 하나로마트가 십 리 밖에 있다면, 그것은 곧 일상의 끼니가 인스턴트식품과 가공식품 중심으로 기울어진다는 뜻이 됩니다. 그 결과는 근감소증(Sarcopenia)과 영양 불균형, 만성질환 악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한 사람의 건강 문제를 넘어 가족과 지역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지원과 책임이 함께 가야 합니다
영국 정부는 ‘좋은 식품 순환(Good Food Cycle)’ 정책을 통해 무료 조식 클럽을 확대하고 학교 급식을 50만 명에게 추가로 제공하는 한편, 복지 혜택의 두 자녀 제한을 폐지해 45만 명의 아동을 빈곤에서 구제했다고 밝혔습니다. 정책의 방향성 자체는 평가할 만한 면이 있습니다. 다만 식품 사막의 본질이 소득보다 지리와 물류에 있다는 연구 결과를 감안하면, 복지 확대만으로 풀리지 않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도 함께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 역시 시니어 식품 접근성 문제를 복지의 영역에만 묶어 두기보다, 지역 농협과 협동조합, 5일장의 재정비, 이동식 장터와 식품 배송 서비스 등 시장과 공동체가 함께 작동하는 구조로 풀어 가야 할 것입니다. 가족과 이웃이 정기적으로 장보기를 분담하는 작은 실천 또한 결코 가볍지 않은 사회적 안전망이 됩니다.
시니어 독자께 한 가지 당부를 드립니다. 식품 접근성의 어려움은 부끄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가까운 행정복지센터와 보건소를 통해 영양 관리 프로그램과 식품 지원 사업을 먼저 확인하시고, 거동이 불편하시다면 노인맞춤돌봄서비스(☎ 1661-2129), 보건복지상담센터(☎ 129), 전국푸드뱅크(☎ 1688-1377)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신선한 채소와 두부, 달걀, 생선이 식탁에 꾸준히 오를 수 있도록 미리 계획을 세우시는 일이 곧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입니다. 혼자 짊어지지 마시고, 가족과 이웃과 지역사회의 손을 함께 잡으시기 바랍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