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의 갈림길에서, 시니어 리더가 마주한 유산의 보존과 혁신
76세의 경영자가 있습니다. 그는 평생 ‘죽음’을 사업으로 삼아 살아왔습니다. 정확히는 죽음 이후의 공간, 즉 묘지를 조성하고 분양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칠레의 장례 서비스 기업 몬테베르데 메모리얼 그룹(MMG)의 CEO 하비에르 몬토야는 수십 년에 걸쳐 칠레 중산층이 사랑하는 공원 묘지를 일궈왔습니다. 아름답게 가꿔진 잔디밭, 정돈된 묘비, 매주 일요일 세상을 떠난 아내를 찾아와 소리 내어 말을 건네는 노인. 그에게 묘지는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었습니다. 가족이 영원히 돌아올 수 있는 집이었고,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위로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하비에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올해 5-6월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는 이 노(老) 경영자의 딜레마를 사례 연구로 소개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매장이냐, 화장이냐’는 비즈니스 전략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훨씬 더 깊은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오랜 세월 쌓아온 신념과 가치, 그것이 구현된 사업 모델이 시대의 변화 앞에서 어떻게 흔들리는가. 그리고 시니어 리더는 그 앞에서 어떻게 서야 하는가. 이것은 장례 산업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격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시니어 경영자, 더 나아가 이 사회 전체에 던지는 화두입니다.
구조적 위기, 그리고 두 개의 갈림길
MMG가 직면한 위기는 단기적인 경기 침체가 아닙니다. 구조적 전환입니다. 토지 가격 상승과 행정 허가 지연으로 신규 공원 개발은 사실상 막혔습니다. 가뭄은 이제 계절의 문제가 아니라 항구적 현실이 되었고, 24개월 안에 토양 수분 센서·자동화 설비·누수 감지 시스템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법적 요건까지 부과되었습니다. 비용은 사방에서 압박해 오는데, 수익을 떠받치던 매장 수요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화장(火葬)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화장의 순이익률은 약 35%로 매장(약 50%)보다 낮습니다. 독립 장례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가격 경쟁은 심해지고 있고, 서비스는 갈수록 범용화(commoditization)되고 있습니다. 전략담당 임원 루시아 모레노는 이렇게 말합니다. “차별화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가격 경쟁에서 싸워야 합니다.” 이것은 경고가 아닙니다. 이미 시작된 현실입니다.
두 개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묘지 공원에 계속 투자하며 ‘품격 있는 추모’의 가치를 고수하는 것. 다른 하나는 수익성이 낮더라도 화장 중심의 새로운 서비스 모델로 전환하는 것. 하비에르는 어느 쪽도 선뜻 선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류학자가 말한 것: 변화는 일시적인가, 영구적인가
하비에르는 산티아고 외곽의 한 대학을 찾아갑니다. 인류학자 마리아 토레스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CEO가 인류학자를 찾아간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의미심장합니다. 숫자가 아닌 인간의 행동 변화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세 시기로 나눠 이야기합니다.
코로나 이전, 라파엘이라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주 일요일 세상을 떠난 아내의 묘를 찾아 소리 내어 말을 건넸습니다. 그에게 묘지는 서비스가 아니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마련하지 못했던 집, 언젠가 자신도 그곳에서 함께 잠들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였습니다.
코로나 기간, 한 남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다. 그냥 지시를 받았을 뿐이다.” 장례는 행정 절차가 되었습니다. 신부님도 없었고, 가족도 모이지 못했습니다. 죽음의 신성함과 서사가 무너졌습니다.
코로나 이후. 변화는 가속됩니다. 가족은 흩어졌고, 믿음은 선택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화장은 단순히 저렴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미의 선택입니다. “나는 수십 년간 묘지 관리비를 내지 않겠다. 내 슬픔을 조용히, 내 방식대로 정리하겠다.” 이것이 현대인의 마음입니다.
마리아는 결론을 이렇게 말합니다. “묘지는 떠나간 이와 지속적 관계를 원하는 가족에게 적합합니다. 그 집단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선호는 더 이상 디폴트(default)가 아닙니다.”
하비에르는 이 말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우리가 일시적인 변화를 영구적인 것으로 잘못 읽고 있는 것 아닐까요? 코로나가 의례를 앗아갔지만, 삶이 정상화되면 사람들은 다시 안식처를 원하지 않을까요?” 이것은 단순한 낙관론이 아닙니다.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삶에 대한 깊은 믿음입니다.
아들의 제안: 혁신인가, 본질의 훼손인가
그날 저녁, 하비에르는 아들 다니엘, 손녀 소피아와 함께 일요일 가족 식사를 합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MMG의 미래로 흘러갑니다.
MBA를 마치고 혁신 컨설팅 회사에서 일한 다니엘은 세 가지 구체적인 제안을 꺼냅니다. 첫째, 방문 벽(Visiting Wall). 새로운 추모 공원에서 이미 일반화되고 있는 형태로, 유골함을 안치하고 가족이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화장을 선택하더라도 지속적 방문과 추모가 가능해집니다. 둘째, AI 추모 동반자(AI-assisted remembrance). 고인의 사진, 편지, 음성 녹음을 기반으로 연결의 도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완전히 선택적으로, 원하는 가족에게만 제공합니다. 셋째, 냉동 보존(Cryogenic storage). 부활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존하는 것으로, 이미 기술에 대한 믿음을 가진 세대가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다니엘은 설명합니다.
하비에르의 표정이 굳어집니다. “챗봇이군.” 다니엘이 조심스럽게 고칩니다. “추모 동반자입니다, 아버지. 원하는 가족에게만요.”
그러나 다니엘은 더 근본적인 질문도 꺼냅니다. “아버지는 묘지 분양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할부로 구입하는 가족에게는 수십 년의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거잖아요. 그게 정말 그들을 돕는 건가요?” 하비에르는 단호히 답합니다. “나는 가족이 묘지를 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연결된 공간을, 집을 사는 겁니다.”
그때 손녀 소피아가 조용히 묻습니다. “사람들은 영원히 기억되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그냥 지금 당장 잊히지 않고 싶은 건가요?”
이 한마디에 하비에르는 말문이 막힙니다.
두 전문가의 엇갈린 조언: 피어슨의 교훈과 묘지의 디지털화
HBR은 두 전문가의 코멘터리를 수록합니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의 결론은 다릅니다.
전 피어슨(Pearson) CEO 존 팰런은 매장과 화장의 동시 운영을 권합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끌어옵니다. 피어슨은 연간 2,000만 권의 종이 교과서를 팔다가 100만 권 이하로 추락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은, 종이책이 아니라 ‘배움을 지원한다’는 사명이 핵심이었다는 것입니다. MMG도 마찬가지입니다. ‘묘지를 짓는다’는 형식이 아니라 ‘존엄, 의례, 돌봄을 제공한다’는 본질을 지킨다면, 화장을 통해서도 그 사명은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는 덧붙입니다. “변화는 순환적이라는 이야기는 늘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 그것은 위안일 뿐입니다.”
반면 장례 산업 기술 스타트업 Tending의 창업자 아르템 마닐로프는 다른 입장입니다. 화장 시장 진출보다 기존 묘지 사업의 디지털 현대화가 우선이라고 봅니다. 묘지 기업의 고질적 문제는 매장 이후 가족과의 관계가 사실상 단절된다는 것입니다. 원격 묘지 관리, 온라인 헌화, 기념 서비스, 묘비 복원 구독 서비스. 이런 반복 수익 모델을 쌓으면 기존 사업의 생애 가치(lifetime value)는 크게 확장될 수 있습니다. AI 기반 추모, 디지털 페르소나, 홀로그램. 이것은 결국 다니엘의 비전이 실현될 방향이지만, 그 출발점은 먼저 가족과의 디지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두 사람의 시각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를 누가 어떻게 이끄느냐에 따라 사업의 생존이 갈린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 우리의 하비에르는 어디에 있는가
이 이야기를 한국 사회에 대입해 봅니다.
한국의 화장률은 이미 90%를 넘어섰습니다. 납골당과 수목장이 빠르게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매장 묘지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고, 심지어 연고 없는 묘를 정리하는 일이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업무가 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 한국은 이미 ‘화장의 사회’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죽음을 새로운 방식으로 의미화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냥 ‘처리’하고 있는 것일까요. 납골당에 안치된 수십만 개의 유골함 앞에서 가족들이 실제로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비율은 얼마나 됩니까. 수목장을 선택한 이들은 훗날 그 나무를 찾아가는 것이 얼마나 현실적입니까. 화장이 단순히 편리하고 저렴하기 때문에 선택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마리아 토레스가 우려한 방향, 즉 죽음이 행정 절차로 전락하는 방향으로 이미 상당히 걸어온 것입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변화를 이끌어야 할 시니어 리더들의 자세입니다. 한국의 장례 산업, 노인 요양 산업, 실버 서비스 분야에는 수십 년의 경험을 가진 창업자와 경영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하비에르와 비슷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자신이 믿어온 방식, 오랜 세월 검증된 가치, 그것으로 일궈온 사업이 흔들리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때 취할 수 있는 태도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변화를 부정하는 것. “이건 일시적인 현상이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하비에르의 반론과 같은 태도입니다. 때로는 맞습니다. 그러나 구조적 전환을 순환으로 오인하면 치명적입니다.
둘째, 변화에 무조건 편승하는 것. 젊은 세대의 말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추종하거나, 유행하는 기술이라면 검증 없이 도입하는 것. 이것도 위험합니다. 사업의 본질과 고객과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셋째, 본질을 지키면서 형식을 바꾸는 것. 가장 어렵지만 가장 올바른 길입니다. 피어슨의 사명이 ‘책’이 아니라 ‘배움’이었듯, MMG의 사명이 ‘묘지’가 아니라 ‘존엄과 연결’이었듯, 사업의 핵심 가치를 다시 정의하고 그것을 새로운 형식으로 구현하는 것입니다.
유산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
손녀 소피아의 질문이 울립니다. “사람들은 영원히 기억되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그냥 지금 당장 잊히지 않고 싶은 건가요?”
이것은 경영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런 질문입니다. 우리가 제공하는 것은 영속적인 가치입니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의 안도입니까. 그리고 그 두 가지는 반드시 양자택일해야 합니까.
시니어 리더의 강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비에르가 수십 년 동안 본 것은 단순히 시장의 변화가 아닙니다. 인간이 죽음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 슬픔이 어떻게 위로로 전환되는가, 공간이 인간의 감정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 경험의 축적은 어떤 MBA 교육과정도, 어떤 컨설팅 보고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의 혁신적 아이디어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비에르의 깊은 이해를 토대로 할 때 비로소 공허한 기술 실험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서비스가 됩니다.
전통과 현대의 갈림길에서 시니어 리더가 해야 할 일은 양자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지켜온 본질적 가치를 재확인하고, 그것을 새로운 시대의 언어와 형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유산(legacy)은 과거에 쌓아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미래 세대에게 어떤 형태로 전달하느냐에 의해 완성됩니다.
하비에르 몬토야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결정을 위해 인류학자를 찾아가고, 아들과 손녀의 말을 진지하게 들은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76세의 나이에 스스로 감당하려 한다는 사실. 그것 자체가 이미 시니어 리더십의 올바른 모습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되, 본질을 잃지 않는 것. 세대의 목소리를 경청하되, 경험의 무게를 포기하지 않는 것. 지원(Fördern)과 요구(Fordern)의 균형 위에서 미래를 설계하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시대가 시니어 리더에게 요청하는 역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