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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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으로 간 식탁

세계 각국 정부가 국민의 건강한 식습관을 위해 마련한 정책이 정작 법정에서 발목을 잡히고 있습니다.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이 2026년 8월 3일 자 지면에서 보도한 국제 공동 조사 결과는 시니어 독자 여러분께서 눈여겨보실 만합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 UPF) 기업들이 더 건강한 식단을 장려하려는 정부를 상대로 잇달아 소송을 제기하면서, 비만 위기 대응 노력이 지연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글로벌 식품 기업들이 필수적인 공중보건 조치의 도입을 가로막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각국이 수십억 달러(1달러당 약 1,400원 기준, 약 수조 원)에 이르는 의료비와 법적 비용을 떠안게 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해악과 이익이 같은 제품에 얽혀 있을 때 산업계가 의구심을 퍼뜨리고 규제를 방해하는 익숙한 패턴이 반복된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235건의 소송, 누적 600년의 지연

이번 조사는 가디언이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라이트하우스 리포트(Lighthouse Reports), 그리고 로버트 앤드 에델 케네디 인권센터, 시드니대학교, 상파울루대학교, 칼다스대학교 연구진과 함께 4개 대륙 언론 파트너 연합을 구성해 진행한 것으로, 이런 방식의 다국적 분석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확인된 사실은 이렇습니다. 2010년부터 2025년까지 멕시코, 콜롬비아, 브라질, 미국, 영국에서 초가공식품을 겨냥한 보건 정책에 대해 모두 235건의 소송이 제기되었습니다. 전체 소송의 4분의 3은 초가공식품 기업 또는 이들을 대변하는 무역 단체가 낸 것이었습니다. 원고가 확인된 기업 주도 소송 가운데 38퍼센트는 코카콜라, 펩시코, 몬델리즈, 켈로그, 다농, 페레로, 지그눅스, 하트랜드 푸드 프로덕츠 그룹 등 여덟 개 모기업이 제기했습니다.

주목할 대목은 승패의 결과입니다. 결론이 난 소송 가운데 4분의 3은 식품 기업 측이 패소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 소송은 사건당 평균 2.5년, 누적으로 약 600년에 달하는 법적 공방을 만들어냈고, 그동안 공중보건 조치의 시행은 미뤄졌습니다. 정부와 보건 당국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소송에 묶여 있어야 했습니다.

이기지 않아도 되는 싸움

여기서 우리는 구조적 문제를 읽어야 합니다. 소송의 목적이 반드시 승소에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법안의 시행 속도를 늦추고, 다른 나라와 규제 당국이 유사한 정책을 도입하려는 의지를 꺾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거둡니다. 대기업에게 소송 비용은 감당 가능한 사업 경비이지만, 국가의 보건 예산에는 실질적 손실입니다. 자원의 비대칭이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지연 전술이라 하겠습니다.

공개적으로 이들 기업은 소비자가 정보에 입각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 해결책의 일부가 되겠다고 밝혀왔습니다. 표방하는 태도와 법정에서의 행동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다는 점을 이번 조사는 보여줍니다.

우리 식탁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약 10억 명이 비만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은 심장질환, 제2형 당뇨병, 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초가공식품 소비는 급증해 영국, 미국, 호주 등에서는 이미 평균 식단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시니어 세대에게 이 문제는 더 절실합니다. 간편식과 가공식품에 대한 의존도는 조리의 부담, 1인 가구의 증가와 맞물려 높아지고 있습니다. 만성질환을 이미 관리하고 계신 분들께는 나트륨과 당류, 포화지방의 과잉 섭취가 곧바로 건강 악화로 이어집니다. 포장 전면 경고 라벨, 광고 제한, 건강부담금 같은 정책 논의가 우리 사회에서도 제기될 때, 그 논의가 어떤 힘에 의해 지연되는지 시민이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질서와 균형의 원칙

저는 시장의 자유와 기업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존중합니다. 법률적 이의 제기 자체를 봉쇄하자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규제는 과학적 근거 위에 서야 하고,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어야 하며, 산업계에는 반론의 기회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법치의 기본입니다.

다만 권리의 행사와 권리의 남용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길 생각 없이 시간을 벌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은 사법 제도의 본래 목적을 훼손합니다. 국민의 건강이라는 공공재를 사적 이익의 계산 아래 두는 일은 어떤 시장 원리로도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시니어 세대는 결핍의 시대를 지나 풍요의 시대를 함께 통과해 온 세대입니다. 무엇이 몸에 이롭고 무엇이 해로운지를 삶으로 겪어 아시는 분들입니다. 그 경험과 분별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안전망의 기준점입니다. 규제는 절제된 근거 위에서, 기업은 정직한 책임 위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킬 때 우리의 식탁도 비로소 안전해질 것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