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사람 부서, 변하는 직장 풍경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 젊은 최고경영자가 회사의 인사(HR) 조직 전체를 해고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인공지능(AI) 시대의 기업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람을 다루는 부서가 도리어 사람과 관련된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습니다. 회사 운영의 기본 골격으로 여겨졌던 인사 조직이 한순간에 정리된 이번 일은, 효율을 앞세운 글로벌 기업들의 인력 운용 방식이 어느 지점까지 변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볼트의 사례와 32세 창업자의 항변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The Times) 2026년 5월 21일자 보도와 미국 경제 매체 포춘(Fortune), 정보기술 전문 매체 더 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의 보도를 종합하면, 이번 결정의 주인공은 미국 온라인 결제 솔루션 기업 볼트(Bolt)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라이언 브레스로우(32) 씨입니다. 볼트는 지난 4월 전체 인력의 약 30퍼센트를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였으며, 이는 최근 4년 사이에 진행된 네 번째 감원이었습니다.
브레스로우 씨는 포춘이 주최한 한 행사에서, 회사에 인사팀이 존재하였으나 그 부서가 도리어 실재하지 않는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며 그들이 떠나자 문제들도 함께 사라졌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또한 인사 전문 인력은 회사가 안정적인 시기를 보내거나 대규모 조직일 때 비로소 유의미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견해를 덧붙였습니다. 지금의 볼트가 처한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기업 가치 97퍼센트가 증발한 회사의 사정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회사의 가파른 추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더 인포메이션의 분석에 따르면, 볼트의 기업 가치는 2022년 정점이었던 110억 달러(약 16조 5천억 원)에서 2024년에는 3억 달러(약 4,500억 원)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약 2년 만에 평가 가치의 97퍼센트가 사라진 셈입니다.
2022년 회사를 떠났던 브레스로우 씨는 2025년 직접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기 위하여 복귀하였으며,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직원들 사이에 퍼져 있던 특권 의식(entitlement)이라는 보이지 않는 문화였다고 합니다. 그는 회사가 한때 거두었던 급격한 성공이 임직원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대접받아야 마땅한 존재로 여기게 만들었고, 정작 실무에서는 손에 흙을 묻히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고 진단하였습니다.
마지막 감원 라운드의 대상자는 40명 미만이었으며, 그 가운데 상당수는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결과라고 볼트 측은 밝혔습니다. 사내 협업 도구 슬랙(Slack)을 통해 브레스로우 씨가 직원들에게 전한 메시지에는, 2026년의 시장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슬림하고 인공지능 중심적인 조직체계로 신속히 변신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인사팀이 떠난 자리에는 직원 교육과 일상적 지원 창구 역할에 한정된 소규모 피플 오퍼레이션 팀(People Operations Team)이 새롭게 들어섰습니다.
한국 직장과 시니어 세대에 던지는 질문
이번 사건은 단순히 미국 한 회사의 인사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업무를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인사·마케팅·고객 응대·단순 사무직 등 사무 관리 업무를 줄이려는 결정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일부 경영자들은 사람을 다루는 부서를 슬림화하고 그 자리를 인공지능 기반의 직원 관리 도구로 대체하려는 시도까지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평생을 한 직장에 헌신하며 조직의 안정성과 동료 간의 신뢰를 직장 생활의 근간으로 여겨 온 시니어 세대에게, 알고리즘이 채용과 해고를 결정하는 풍경은 낯설고 또한 불편한 것입니다. 미국 노동계와 학계에서도 인사 부서를 무력화하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인사권을 일임하는 방식이 결국 직장 내 인권 침해와 임의 해고 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효율과 인간 존엄, 그 사이의 균형
기업이 시장의 변화에 발맞추어 조직을 슬림화하고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까지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오랜 세월 한국의 산업화 시대를 이끌어 온 시니어 세대의 경험은 바로 이 균형이 무너졌을 때 어떤 결과가 따라오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의 자리가 점차 작아지는 흐름 속에서, 안정과 책임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일깨우고 합리적인 기준을 새롭게 세우는 일은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어야 할 또 하나의 책무가 아닐까 합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