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의 ‘첫 번째 순간’, 그리고 세대가 함께 짜는 안전망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앞에 두면 누구나 망설입니다. 그리고 그 망설임은 아직 자신만의 돌파구를 열지 못한 사람일수록, 또 나이가 들수록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난생처음 해낸 경험 하나는 “다음에도 해낼 수 있다”는 확신으로 오래 남습니다. 미국의 사회적 기업가이자 구직 상담 분야의 오랜 조언자인 러스 핀켈스타인(Russ Finkelstein)이 최근 한 지면에 풀어놓은 이야기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열두세 살 무렵, 어질러진 무료 급식소 식료품 창고를 스스로 나서서 정리한 일을 자신의 ‘첫 프로젝트’로 꼽습니다. 어른을 설득해 책임을 맡고, 방법을 찾아 끝까지 마무리한 그 경험이 이후 삶의 크고 작은 도전 앞에서 “한 번 됐으니 또 될 수 있다”는 믿음의 씨앗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4분의 벽, 그리고 무너진 ‘불가능’
첫 성취의 힘은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인식을 바꾸기도 합니다. 대표적 사례가 1마일을 4분 안에 주파하는 일입니다. 오랫동안 인간의 한계로 여겨졌던 이 기록은 1954년 5월, 영국의 의대생이자 육상 선수였던 로저 배니스터(Roger Bannister)가 3분 59초 4로 처음 무너뜨렸습니다. 정작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습니다. 그의 기록은 불과 46일 만에 호주의 존 랜디(John Landy)에게 깨졌고, 같은 해 여름 두 사람이 맞붙은 대회에서는 한 경주에서 두 명이 동시에 4분 벽을 넘는 장면이 처음으로 연출되었습니다. 이후 3년 사이에만 열다섯 명의 주자가 같은 기록에 도달했으며, 오늘날에는 “에베레스트를 오른 사람보다 4분 벽을 넘은 주자가 더 적다”던 배니스터 자신의 회고가 무색할 만큼 많은 이들이 그 벽을 통과했습니다. 누군가 ‘처음’을 열어 보이면, 뒤따르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불가능’이라는 빗장이 풀리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커지는 의구심
문제는, 아직 자신만의 돌파구를 열지 못한 이들에게 이 심리적 장벽이 나이가 들수록 더 무겁게 얹힌다는 점입니다. 핀켈스타인은 자신이 만난 많은 사람이 “나는 남에게 가르쳐 줄 만한 성취를 단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고 믿더라고 전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 학교를 졸업했거나 오랜 직장 생활을 거쳐 온 사람이라면, 그가 당연하게 여기는 경험을 간절히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이 주변에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대목이야말로 시니어 세대가 주목해야 할 지점입니다. 수십 년의 사회생활을 통해 이미 수많은 ‘첫 번째 순간’을 통과해 온 시니어에게는, 스스로 과소평가하기 쉬운 경험의 자산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안전망은 홀로 짤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도전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핀켈스타인이 제시하는 방법은 의외로 담백합니다. 첫째, 가장 먼저 이루고 싶은 목표를 하나 정하고 자신이 쓸 수 있는 시간을 가늠할 것. 둘째, 그 일을 이미 해낸 사람을 찾아 배울 것, 개인적 인연이 없다면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는 방법도 있습니다. 셋째, 누구에게나 똑같이 던질 공통 질문의 목록을 미리 준비할 것. 넷째,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을 돕는 단체나 조력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것. 다섯째, 나를 책임감 있게 이끌어 줄 사람과 함께 구체적인 계획과 단계별 목표, 그리고 일정을 세울 것. 요컨대 막연한 결심이 아니라 검증된 사람에게 배우고, 합리적 기준과 계획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라는 조언입니다.
주목할 것은 그가 도약의 위험을 덜어 주는 ‘그물’, 곧 안전망의 존재를 거듭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아래에서 나를 받쳐 줄 누군가가 있다면 큰 도약도 한결 덜 두렵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그가 책과 조사, 그리고 더 많은 기회를 가진 벗들에게 기대어 낯선 세계를 헤쳐 왔듯, 오늘의 그는 지도를 그리고 안내서를 쓰며 다른 이들이 의구심의 협곡을 건너도록 돕고 있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돕되, 서로의 그물이 되어
이 이야기는 청년과 초기 창업자를 향한 조언으로 쓰였지만, 그 울림은 시니어 세대에게 오히려 더 깊습니다. 한편으로 시니어는 은퇴 이후의 새로운 일거리, 낯선 디지털 기기와 인공지능(AI) 도구, 지역 사회에서의 새 역할 등 여전히 수많은 ‘처음’을 마주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막연한 두려움이나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검증된 사람에게 배우고 계획으로 무장하는 냉철함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시니어는 자신이 이미 통과해 온 경험을 통해, 젊은 세대의 ‘첫 번째 순간’을 받쳐 주는 든든한 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세대 사이의 관계는 서로의 몫을 다투는 갈등이 아니라, 서로의 도약을 받쳐 주는 연대일 때 가장 튼튼합니다.
스스로 일어서려는 의지와 서로를 받쳐 주는 배려는 어느 하나도 뺄 수 없는 두 축입니다. 오랜 세월 쌓아 온 경험과 질서를 자산으로 지키되, 새로운 도전 앞에서는 합리적 기준으로 길을 여는 것. 이것이 시니어가 자신과 이웃을 위해 함께 안전망을 짜는 길입니다. 먼저 벽을 넘어 본 사람의 뒷모습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