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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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신임 총리의 사적 경험이 던진 질문, 한국은 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총리 관저에 들어가기 전, 아들은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이 2026년 7월 24일 자 지면에서 전한 이야기입니다. 앤디 번햄 신임 영국 총리가 다우닝가 10번지에 입성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 일 가운데 하나는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를 뵈러 간 것이었다고 합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신 아버지는 아들이 어떤 자리에 오르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아들은 앞으로 자주 찾아뵙지 못할 사정을 설명하고 싶었으리라는 것이 이 칼럼의 관찰입니다.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특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쪽에는 일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연로하신 부모가 계십니다. 그 사이에서 매일 저울질하는 중년 자녀는 영국에도, 한국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세 곳에 동시에 존재해야 하는 세대

가디언의 필자는 X세대가 이전 세대와 결정적으로 다른 조건에 놓여 있다고 지적합니다. 부부가 동시에 전일제로 일하면서 부모 돌봄을 감당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집과 아이들이 자라는 현재의 집 사이를 오가며, 한쪽에서는 부모님의 약 복용을 챙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입시를 앞둔 자녀를 살핍니다. 일하는 어머니의 삶이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중년 딸의 삶은 직장과 집, 그리고 부모님이 계신 곳까지 세 곳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어느 한 곳에서도 충분히 함께 있어 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늘 따라다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금의 실체

이 칼럼이 사용한 핵심 개념은 돌봄 세금(Care tax)입니다. 제도가 부담하지 않는 비용을 가족이 조용히 떠안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세금의 일부는 실제 금액으로 청구됩니다. 잉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 자산이 2만 3,250파운드(약 4,301만원)를 넘는 경우 요양원 비용은 월평균 5,192파운드(약 960만원)에 이르고, 방문 요양 인력의 비용은 분당 최대 1파운드(약 1,850원)까지 든다고 합니다. 3명 가운데 1명은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며 2년간 평균 6만 7,000파운드(약 1억 2,395만원) 이상이 소요된다는 수치도 제시됩니다. 참고로 잉글랜드와 달리 스코틀랜드는 개인 돌봄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웨일스는 보다 관대한 자산 조사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몫은 청구서에 찍히지 않습니다. 영국 자선단체 카러스 UK(Carers UK)의 추산에 따르면 260만 명이 가족을 무급으로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여전히 일하는 사람 가운데 61퍼센트는 돌봄이 업무에 영향을 준다고 답했고, 5분의 1은 더 낮은 급여나 하위 직급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결국 기업은 숙련된 인재를 잃고, 국가는 병원에 머물지 않아도 될 환자의 입원 일수와 사라진 경제 활동으로 그 세금을 대신 냅니다.

정치가 멈춰 선 자리

주목할 대목은 이 문제에 손을 댄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물러섰다는 사실입니다. 필자는 그것이 개인적 경험의 부족 때문은 아니었다고 짚습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중증 장애를 가진 아들의 아버지였고 그의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를 앓았습니다. 테레사 메이와 키어 스타머 두 전 총리의 어머니 역시 각각 다발성 경화증과 스틸병으로 장애를 겪었습니다.

번햄 총리 자신도 2009년 보건부 장관 시절, 모든 유산에 10퍼센트의 상속 부과금을 매겨 국가 돌봄 서비스를 운영하자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야당이 이를 사망세(death tax)로 규정하고 묘비 이미지를 앞세운 공격 광고를 내보내면서 논의는 그대로 무산되었습니다. 이후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커졌지만, 부모 세대의 주택 자산에 기대어 내 집 마련을 기대하는 젊은 세대가 늘면서 상속에 손대는 일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 지점에서 필자가 제시하는 반론은 경청할 만합니다. 상속 부과금의 본질은 재산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사태가 닥쳤을 때 모든 것을 잃는 일을 막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가정이 당연하게 여기고 매달 내는 주택 화재보험과 성격이 다르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

남의 나라 이야기로 넘기기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의 중년 세대 역시 부모 부양과 자녀 교육, 본인의 노후 준비라는 세 가지 짐을 동시에 지고 있습니다. 장기요양보험이라는 제도적 그릇이 있다는 점은 영국보다 나은 조건이지만, 등급 밖에 놓인 분들과 실제 요양시설 이용 시 본인부담, 그리고 가족이 감당하는 시간과 감정의 몫은 통계에 잡히지 않습니다. 돌봄을 위해 경력을 접은 딸과 며느리, 아들의 숫자를 우리는 아직 제대로 세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균형 있는 해법을 위하여

저는 돌봄의 일차적 책임이 가족에 있다는 오랜 가치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가족의 정성은 어떤 제도로도 대체되지 않습니다. 다만 가족이 무너질 때까지 방치하는 것은 전통의 수호가 아니라 전통의 소모입니다. 부양의 미덕을 지키고자 한다면, 그 미덕을 실천하는 사람이 직장을 잃지 않도록 뒷받침하는 장치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재원 없는 선의는 다음 세대의 부채가 될 뿐입니다. 무상이라는 말이 곧 무료를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니어 세대는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원(Fördern)과 요구(Fordern)가 함께 가야 하듯, 급여 확대를 논한다면 재원 조달 방식과 부정수급 관리, 예방 중심의 지출 전환을 같은 무게로 논의해야 합니다. 넘어짐과 욕창, 급격한 악화를 미리 막는 편이 그 결과를 값비싸게 치료하는 것보다 낫다는 원칙은 이미 검증된 상식입니다.

돌봄은 언젠가 우리 모두가 마주할 문제입니다. 조용히 감당해 온 이들의 부담을 이름 없는 세금으로 남겨 둘 것인지, 사회가 함께 나눌 항목으로 옮겨 놓을 것인지, 이제는 답해야 할 때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