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14일
05-13-0600

떠나는 순간을 남겨질 가족의 몫으로만 미루어 두던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설계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직접 전하는 자리를 살아 있을 때 마련하는 풍경이 점차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죽음을 외면하기보다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려는 흐름이 국내외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셈입니다.

해외 사례, 슬픔보다 감사로 채워지는 자리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는 2026년 5월 10일자 보도에서 시한부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자신의 추모 자리를 직접 기획해 함께 참석하는 이른바 ‘생전 장례식(Living Funeral)’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흐름은 죽음을 금기시하지 않고 인간의 유한함을 자연스럽게 인정하자는 ‘긍정적 죽음 운동(Death Positive Movement)’의 한 갈래로 분석됩니다. 지난해 12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36세의 마누에레(Manuere)는 자신의 마지막을 슬픔이 아닌 음악과 예술 활동, 친구들과의 명상으로 채우길 원했고, 그 소망은 그대로 실현되었다고 합니다.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임종 동반자, 이른바 ‘데스 둘라(Death Doula)’들은 이러한 자리의 기획을 도우며 본인과 가족에게 정서적 지원까지 함께 제공합니다. 워싱턴 포스트가 인용한 임종 동반자 워커 무함마드(Walker Muhammad)는 이 변화가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사회적 흐름의 일부라고 설명했습니다. 암 진단을 받은 뒤 가족과 친구를 한자리에 모았던 샌디(Sandy)의 사례도 함께 소개되었는데, 그의 딸 케이리 카판(Kaley Kappan)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행복한 기억을 함께 나눈 그 시간이 비통함을 견디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구조적 배경, 길어진 임종 과정과 개인 선택의 확장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평균 수명의 연장과 임종 과정의 의료화라는 구조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의학의 발전으로 임종 자체가 길어지면서, 어떤 의료를 받고 어떤 의료를 거두어들일 것인지에 대한 본인의 의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핵가족화와 1인 가구의 증가로 사후 절차를 전적으로 가족에게 맡기기 어려워진 사회적 현실 역시 본인이 미리 준비하는 마무리의 필요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적용, 제도와 문화의 동시 변화

이러한 흐름은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2025년 5월에는 원로 배우 박정자 씨가 강원 강릉시 해변에서 지인 약 130여 명을 초청해 생전 장례식을 치러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인생의 마무리를 미리 정리해 두는 일본의 슈카츠(終活) 문화가 한국에서도 점차 친숙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제도적 기반도 빠르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집계에 따르면 2026년 5월 초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Advance Directives) 누적 등록자는 약 335만 명에 이르며,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분도 약 19만 6천 명,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의 이행 사례 역시 약 50만 8천 건을 넘었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의료 선택을 본인이 직접 정해 두려는 시민이 그만큼 빠르게 늘고 있다는 뜻입니다. 빈소를 차리지 않는 무빈소 장례, 염습을 생략하는 무염습 장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무형식 장례 등 이른바 ‘3무 장례’도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다만 짚어 두어야 할 대목도 있습니다. 장례는 떠난 이를 예우하고 공동체의 슬픔을 함께 수습해 온 오랜 사회적 의례이기도 합니다. 형식의 간소화가 가족과 이웃이 함께 애도하는 시간을 지나치게 줄여 버린다면,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추스르는 자리 또한 좁아질 수 있습니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되, 세대를 잇는 공동체의 작별 자리는 어떤 형태로든 보존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마무리, 자유로운 선택과 책임 있는 준비의 균형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정돈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시니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자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보건복지부 지정 등록기관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무료로 작성할 수 있으며, 작성 후에도 본인 의사에 따라 언제든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안내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대표번호 1855-0075 또는 누리집 www.LST.go.kr에서 받으실 수 있고,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관한 정보는 보건복지상담센터 129번이나 hospice.go.k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깊어질 때에는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 1577-0199를 통해 24시간 상담을 받으실 수 있으며, 의학적 결정은 반드시 주치의 등 전문가와 충분히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자신이 원하는 마무리를 가족에게 미리 알려 두는 일은 곧 남겨질 가족의 부담을 덜어 드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한 번쯤 가족과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고 싶은지 차분히 이야기를 꺼내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떠나는 날이 슬픔만이 아니라 감사와 사랑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그 준비를 시작하기에 결코 이른 때란 없습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