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보지 않는 시험장, 붓을 든 자들이 앉다
산문(山門)에 닿기까지 스물이레가 걸렸다.
소년이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문파라 하면 높은 담과 창을 든 문지기를 떠올렸는데, 천승관의 산문은 그저 오래된 돌기둥 두 개였다. 문짝도 없었다. 누구든 걸어 들어올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기둥에는 글씨 대신 홈이 파여 있었다. 세로로 길게 여러 줄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손으로 만져 닳은 자국이었다. 몇백 년치인지 알 수 없었다.
모여든 사람은 이천이 넘었다.
칼을 찬 자, 창을 세운 자, 팔뚝이 소년의 허벅지만 한 자도 있었다. 저마다 문파의 이름을 대며 서로를 재고 있었다. 소년은 등에 진 헝겊 뭉치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뽑는 수는 백이라 하였다.
시험장은 산 중턱을 깎아 만든 넓은 터였다.
돌계단을 올라간 자들이 하나같이 걸음을 멈추었다. 터에는 병장기가 하나도 없었다. 겨루기를 위한 자리도, 목표를 세울 과녁도 없었다. 대신 짚자리가 가지런히 깔려 있었고, 그 위마다 종이 한 묶음과 먹, 붓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글재주로 사람을 뽑는단 말이오?”
누군가 불평했다. 여기저기서 같은 소리가 났다. 칼을 찬 자들의 얼굴이 특히 험해졌다.
돌 위에 노인이 하나 올라섰다. 마르고 등이 굽었으며, 무복이 아니라 소매 넓은 평복 차림이었다. 천승관 총교련 오계대사(吳繼大師)라 하였다.
“셋을 이르겠다.”
목소리는 크지 않은데 터 끝까지 들렸다.
“첫째, 앞으로 사흘간 이 산에서 지낸다. 잠자리도 끼니도 각자 알아서 한다. 둘째, 그 사흘 동안 자기가 한 모든 일을 남김없이 적어 낸다. 셋째, 그것뿐이다.”
이천 명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모든 일이라 하시면.”
“모든 일이다.”
노인이 담담히 답했다.
“물을 몇 번 길었는지. 몇 걸음을 걸었는지. 불을 붙이려다 몇 번 실패했는지. 실패하고 나서 무엇을 바꾸었는지. 바꾼 뒤에는 몇 번 만에 붙었는지.”
“그런 것을 왜 적습니까.”
“그것을 포로세수(捕勞細數)라 한다.”
노인이 처음으로 말을 길게 하였다.
“노고[勞]를 붙들어[捕] 잘게[細] 센다[數]는 뜻이다. 세지 않은 노고는 노고가 아니라 기분이다. 사흘 뒤 너희 가운데 절반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고.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몇 번을 했는지 대답하지 못하는 자의 열심은, 본인만 아는 열심이다.”
노인이 돌에서 내려왔다.
“시작하라.”

소년은 첫날 저녁에야 붓을 들었다.
그리고 한 식경을 종이 앞에 앉아 있었다.
적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하루 종일 쉬지 않았다. 물을 길었고 나뭇가지를 모았고 불을 피우려 애썼다. 손등이 까지고 옷이 젖었다. 분명 열심히 했다.
그런데 물을 몇 번 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세 번인가 네 번인가. 불은 몇 번 만에 붙었는가. 여러 번 실패했는데 그 여러 번이 다섯인지 열인지 알 수 없었다. 실패하고 나서 무엇을 바꾸었는가. 바꾸긴 바꾼 것 같은데 무엇을 바꾸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소년은 결국 이렇게만 적었다.
물을 길었다. 나무를 모았다. 불을 피웠다.
세 줄이었다.
밤에 소년은 다른 자리들을 지나쳐 걸었다.
모닥불 곁에 주판을 허리에 찬 소녀가 앉아 있었다. 소년보다 두어 살 위로 보였다. 소녀는 붓을 놀리며 소리 내어 세고 있었다.
“물 일곱 번. 그중 두 번은 쏟아서 다시. 나무 예순두 개비. 불 스물넷 만에 붙음. 열두 번째에 잔가지를 밑에 깔았더니 연기가 달라졌고, 열아홉 번째에 바람 방향으로 돌아앉았음.”
소녀의 종이에는 이미 여든 줄이 넘게 적혀 있었다.
조금 떨어진 바위 아래에는 얼굴을 천으로 가린 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다만 낮 동안 오계대사가 말한 세 가지를 그대로 옮겨 적어두고, 그 아래에 이렇게 덧붙여 두었다.
금하지 않은 것은 해도 되는가. 확인 요.
다른 쪽에는 붓을 세 자루나 쥔 소녀가 있었다. 그 애는 제 일이 아니라 남의 말을 받아 적고 있었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누가 무엇을 하겠다고 했다가 하지 않았는지를.
소년은 자기 종이 세 줄을 떠올리고 조용히 돌아섰다.
이튿날 아침, 시험장 어귀에 목판이 걸렸다.
첫날 제출된 기록의 줄 수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위에서부터 여든두 줄, 일흔아홉 줄, 일흔넷.
소년의 이름은 맨 아래쪽에 있었다.
시구화 — 세 줄.
목판 앞에 사람들이 몰렸다. 웃는 자가 있었고 혀를 차는 자가 있었다. 누군가 소년을 알아보고 어깨를 툭 쳤다.
“열심히 안 했나 보군.”
소년은 대답하지 못했다.
열심히 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전날 노인이 한 말이 그대로 되돌아올 것이었다.
몇 번을 했는지 대답하지 못하는 자의 열심은, 본인만 아는 열심이다.
목판 앞에 선 채로 소년은 처음으로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부끄러움이었고, 동시에 무언가에 밀리는 느낌이었다. 나보다 잘한 자들의 숫자가 눈앞에 적혀 있는데, 그것이 이상하게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다시 앉고 싶은 마음을 만들었다.
강호에서는 이 힘을 피아박서(彼我迫舒)라 하였다. 저[彼]와 나[我] 사이에서 밀고[迫] 펴는[舒] 힘이다.
그날 밤 소년은 잠들지 못하고 산문 뒤편으로 걸었다.
숲이 깊어지는 자리에서 무언가에 발이 걸렸다. 넘어질 뻔하다 손을 짚었는데, 손바닥에 서늘하고 매끄러운 것이 닿았다.
이끼에 덮인 돌판이었다.
〈다음 회 예고〉 이끼를 걷으니 글자가 반, 나머지 반은 산 위에 있다 — 천 년을 해[年]로 읽는 집과 이음[承]으로 읽는 집.
이 회의 강호경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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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세수(捕勞細數, process) 노고를 붙들어 잘게 세는 것. 세지 않은 노고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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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박서(彼我迫舒, peer pressure) 저와 나 사이에서 밀고 펴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