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역사에 기웃거리지 않고, 내 조상의 역사 앞에 앉았습니다.
은퇴를 앞둔 분들께 저는 오랫동안 “은퇴를 준비하라”고 말해 왔습니다. 돈과 건강만이 아니라 은퇴 뒤의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가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제게 되돌려 보니 답은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남의 역사를 기웃거리지 말고 내 조상의 역사에 집중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국역 지봉유고》는 그 준비의 결실입니다.
한 선비의 생애
지봉(芝峯) 김몽호는 조선 중기 강릉 사람으로, 군자감 주부 김수(金鐩)의 둘째 아들입니다. 율곡 이이가 시관으로 있을 때 진사 시험을 보고 합격했고, 녹둔도에서 이순신과 함께 북변을 지킨 군관이었습니다. 쉰셋에 문과에 올라 정언·지평·장령을 지낸 언관이었고, 천추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도 다녀왔습니다. 까마득한 동향 후배 허균과도 교류했고, 광해조에 무고로 옥사를 치렀고, 예순둘에 강릉으로 돌아와 호해정에서 만년을 보냈습니다. 인조 원년에 공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양하고 끝내 서울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전해 온 책
지봉의 글은 후손들이 1839년 강릉 옥가(玉街)에서 목판으로 새긴 《강릉김씨세고》에 전합니다. 이 책은 그 가운데 지봉의 연보와 시문이 실린 권2~권4를 옮기고 원판을 영인하여 함께 실었습니다.
이 책의 구성
시 108편 135수: 금오(金吾)와 낭관 시절에서 부친상과 임진왜란, 서로(西路)의 관직 생활, 언관과 시련의 시기, 경포와 호해정의 만년, 향촌의 서원과 계(契)로 이어지는 삶의 순서대로 읽힙니다. 연대를 알 수 없는 작품은 계년미상의 절에 따로 모았습니다. 한 편마다 원문과 독음, 국역에 주와 감상을 붙여, 한문을 읽지 못하는 독자도 시의 결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전책과 제가(諸家)의 글: 1609년 증광별시의 전책 「愼終于始」, 지봉과 시를 주고받은 이들의 창수시, 지봉과 정부인 인동 장씨를 보낸 만사, 후대에 새긴 묘갈명과 호해정기가 이어집니다.
해제: 저본의 성격, 이름과 자와 호, 진사에서 급제까지의 스물일곱 해, 1615년 편지 한 통에서 비롯된 옥사, 호해정 스물두 해, 서예가로서의 면모, 두 벌 만사와 백 년 뒤의 비석을 여덟 절로 풀었습니다.
연보·인물 소전·인명 지명 색인·교감기: 지봉을 둘러싼 사람과 자리를 찾아 읽는 길잡이입니다.


처음 한시를 번역하고서
저 김형래(강릉김씨 옥가파 40세)는 지봉(강릉김씨 옥가파 26세)의 직계 후손입니다. 집안에 대대로 전해 온 《강릉김씨세고》를 한 자 한 자 읽어 사백 년 전 선조의 시를 오늘의 말로 옮겼습니다.
《지봉유설》의 이수광과 호(號)가 같아 혼동되기 쉬운 이 시인의 시문을 처음으로 국역하고 영인한 책입니다.
율곡과 이순신의 이름은 누구나 압니다. 그러나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낸 한 선비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썼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인물의 역사는 이미 많은 사람이 쓰고 있습니다.
내 집안의 한 사람, 내 뿌리의 한 줄은 내가 아니면 아무도 읽어 주지 않습니다. 그 고집 때문에 이 번역작업을 했고, 결과적으로 저는 가장 자랑스러운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유품으로 남겨주신 아버님의 기일이 맞추어 출간일자를 잡았습니다.
《국역 지봉유고》
芝峯 金夢虎 詩文 · 직계 14대손 金衡來 國譯
신국판(152×225) · 563면 · 정가 26,000원
발행 (주)캐어유 · ISBN 979-11-221730-0-0
초판 1쇄 2026년 10월 16일 · 교보문고(P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