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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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를 걷으니 글자가 반, 나머지 반은 산 위에 있다

소년은 손으로 이끼를 걷었다.

젖은 이끼는 두껍게 엉겨 잘 떨어지지 않았다. 손톱 밑이 까맣게 되도록 긁어내자 돌판의 아랫부분이 드러났다. 가장자리에 오래된 문양이 둘려 있었다. 글자는 깊게 파여 있어 이끼가 덮여 있어도 획이 살아 있었다.

달빛에 두 줄이 드러났다.

적히지 않은 것은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머리에 있는 것은, 그 사람이 눕는 날 함께 눕는다.

소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기만의 약호가 떠올랐고, 그 위에 아비의 약호가 겹쳤다. 두 사람 모두 누웠고, 두 사람의 머릿속에 있던 것도 함께 누웠다. 소년이 태운 것은 종이가 아니라 이미 죽어 있던 삼십 년이었다.

“거기 있는 것을 아는 자가 오랜만이구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소년이 놀라 일어섰다.

오계대사였다. 노인은 등불도 없이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어디서 왔느냐.”

“…천년상단 서주분궤에서 왔습니다.”

노인의 눈이 잠시 멎었다.

“천년(千年)이라.”

노인은 돌판 쪽으로 몇 걸음 다가와 손끝으로 홈을 훑었다.

“우리도 같은 글자를 쓴다. 다만 너희는 그것을 해[年]로 읽었고, 우리는 이음[承]으로 읽는다.”

소년이 말뜻을 몰라 노인을 보았다.

“천 년을 살겠다는 것과, 천 번을 잇겠다는 것은 다르다. 해를 세는 집은 한 사람이 누우면 거기서 끝난다. 이음을 세는 집은 사람이 바뀌어도 끝나지 않는다. 너희 상단은 삼백 년을 살았으나, 한 번도 이어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소년은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른께서는 저희 상단을 아십니까.”

“안다. 그리고 어제까지 열두 곳이 더 그리 무너졌다.”

노인이 돌판에서 손을 떼었다.

“하나 더 일러두마. 이곳이 왜 맹(盟)이 아니라 관(館)인 줄 아느냐.”

소년이 고개를 저었다.

“맹은 뭉치는 것이고 관은 가르치는 것이다. 뭉친 것은 우두머리가 죽는 날 흩어진다. 강호에 그런 맹이 셀 수 없이 많았고, 지금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가르친 것은 스승이 죽어도 남는다. 남기는 방법에 이름을 붙인 것이 시습통(施習通)이다. 베풀어[施] 익히게[習] 하면 통한다[通]는 뜻이다.”


소년은 망설이다 등에 진 뭉치를 풀었다.

“이것을 보아 주시겠습니까.”

노인은 받아 들고 오래 들여다보았다. 표지의 글을 읽고, 안쪽을 몇 장 넘기고, 마지막의 미완성 조직도까지 보았다.

“네 아비의 것이냐.”

“예.”

“옳게 쓰셨다.”

소년의 가슴이 잠시 뛰었다. 그러나 노인은 곧 뭉치를 덮었다.

“옳게 쓰셨으나, 혼자 쓰셨구나.”

“…혼자 쓰면 안 되는 것입니까.”

“매노열을 혼자 쓰면 그것은 또 하나의 약호가 된다.”

노인이 뭉치를 소년에게 돌려주었다.

“보아라. 여기 적힌 것은 다 옳은 말이다. 소금 창고 자물쇠는 왼쪽으로 반 바퀴 더 돌리라. 참으로 요긴하다. 그런데 이 종이를 읽은 사람이 삼십 년 동안 몇이나 되느냐.”

소년은 답하지 못했다.

“쓴 사람 하나다. 그러면 이것은 매노열이 아니라 일기다. 읽히지 않은 글은 적히지 않은 것과 같다. 저 돌판의 뜻이 그것이다.”

노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네 아비는 반쯤 옳았다. 적으라 하신 것은 옳았고, 혼자 적으신 것은 틀렸다. 나머지 반은 이 산에 있다.”


노인이 손을 들어 가리켰다.

숲이 끊긴 자리 너머, 달빛 아래 검게 솟은 봉우리가 있었다. 다른 산보다 머리 하나가 더 높았다.

“이념봉(理念峰)이다.”

소년이 눈을 좁혔다. 정상 근처 넓은 바위 면에 무언가 흐릿한 것이 보였다. 글자 같기도 하고 그늘 같기도 했다.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삼백 년 전 초대 관주께서 손수 파신 것이다.”

“…읽히지 않습니다.”

“읽힐 리가 없지.”

노인이 처음으로 웃었다.

“산 아래에서 읽히는 글이었다면 새길 까닭이 없었다. 저 글자는 오를수록 선명해진다. 발이 높아진 만큼만 보인다.”

“어른께서는 읽으셨습니까.”

“앞 글자는 읽었다.”

노인은 봉우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삼십 년을 올랐는데, 뒷 글자는 아직 흐리다.”

소년이 무어라 물으려 했으나 노인이 손을 저었다.

“지금 읽으려 애쓸 것 없다. 애써 읽어 보아야 남의 말이 된다. 다만 저것이 저기 있다는 것만 알아두어라.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열심히 걷는 자가, 강호에서 가장 빨리 지친다.”


노인이 돌아서며 한마디를 남겼다.

“목판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세 줄이더구나.”

소년의 귀가 뜨거워졌다.

“부끄러웠느냐.”

“예.”

“좋다.”

노인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부끄러움은 남과 나 사이에서만 생긴다. 혼자였다면 너는 세 줄을 쓰고도 만족했을 것이다. 목판이 너를 다시 앉게 했다면, 그 목판은 제 값을 한 것이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소년이 기록계 앞에 섰다. 종이를 청하는 자리였다.

“몇 장 필요한가.”

“스무 장 주십시오.”

기록계가 눈을 들었다. 하루에 한 사람이 쓰는 종이는 많아야 두어 장이었다.

“혼자 스무 장을 쓸 셈인가.”

“아닙니다.”

소년이 말했다.

“제 것은 한 장이면 됩니다. 나머지는 나눠 줄 것입니다.”


〈다음 회 예고〉 혼자 이긴 자를 떨구고, 남을 이기게 한 자를 뽑다 — 오계대사가 꺼내 든 것은 개인 순위표가 아니었다.


이 회의 강호경영어

  • 시습통(施習通, system) 베풀어 익히게 하면 통한다. 맹(盟)은 흩어지고 관(館)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