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9일

병부령 (兵部令)

정치조직 |: 신라시대(561?) – 알수 없음

연호 : 진흥왕 개국

개념설명

법흥왕 3년(516)에 설치되어 군사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던 병부의 장관이다.

그 뒤 신라의 군사적 활동이 많아지며 영이 증가 되어 544년에 1명, 659년(태종무열왕 6)에 다시 1명이 늘어나 모두 3명의 영이 설치되었다. 관등이 대아찬 이상 태대각간(太大角干)까지인 자로서 임명하였으며, 또한 재상 · 사신(私臣)을 겸할 수도 있었다. 『화랑세기』8세 문노 조에는 537년 법흥왕이 영실공을 부군으로 삼아 왕위를 넘겨주려 하였는데 따르지 않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여 비조공을 병부령으로 삼아 군대를 통솔하게 한 기록이 있다.

관련내용

先是好助公善加耶事 多往使 比助公亦繼之 以功尙靑華公主女靑珍公主 有寵于法興帝 擢居要地 勢與七寵臣相上下 比助公善於覘勢 密附英失公 臣事之 建元二年帝將以英失公爲副君以讓之 恐有不順者 乃以比助公爲兵部令統兵 寵臣多有不肯者 事不成 只召太后執政 斥比助公不用 比助公乃與英失公退處○○○圍碁之屬 消其鬱懷

역문앞서 호조공이 가야의 일을 잘하여 자주 사신으로 갔다. 비조공(比助公) 역시 (그 뒤를) 이었는데, 공을 세워 청화공주(靑華公主)의 딸인 청진공주(靑珍公主)에게 장가들었다. 청진공주가 법흥제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비조공은 요직에 발탁되었다. 그 권세가 일곱 총신과 더불어 막상막하였다. 비조공은 형세를 잘 엿보아 몰래 영실공(英失公)을 따랐으며 신하로서 섬겼다. 건원(建元)127) 2년(537) 제(帝)가 장차 영실공을 부군(副君)으로 삼아 왕위를 넘겨주려 하였는데, 따르지 않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여 비조공(比助公)을 병부령(兵部令)으로 삼아 군대를 통솔하게 하였다. 총신 중에 옳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소태후가 정권을 장악하자 비조공을 물리치고 등용하지 않았다. 비조공은 이에 영실공과 더불어 물러나 머무는 곳에서…바둑 따위를 두며 답답한 마음을 달랬다.

해설

建福 2년(585)이 되면 시간적으로 너무 늦다. 따라서 건복 2년은 建元 2년(537) 법흥왕 24년이 타당하다.

출처화랑세기, 金大問, 8세 문노

관련내용2원문大帝以法興遺命 以英失公爲繼夫 生黃華公主 以英失公不棄 ?○○○○○權臣以斥之 乃以兵部令○○○○○○叔明公主及公 苔宗之父(曰阿珍宗 乃習宝)公之子也

역문대제(大帝)는 법흥대왕의 유명으로 영실공을 계부로 맞이하여 황화공주(黃華公主)를 낳았다. 영실공이 멀리하지 않았는데 …. 권신(權臣)들이 물리쳤다. 이에 병부령(兵部令)을…. … 숙명공주 및 공(公)…. 태종(苔宗)의 아버지는 아진종(阿珍宗)이며 곧 습보공(習宝公)의 아들이다.

해설

『삼국사기』 직관 상에 따르면 병부령은 법흥왕 3년(516)에 설치되었고 진흥왕 5년에 1인이 늘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병부령으로 나오는 것을 보아 진흥왕 5년(544) 이전에 임명된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화랑세기, 金大問, 6세 세종 세계, pp. 7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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