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8일
10-09-0600_대학의 종말, AI와 교육의 미래-1024

미국 대학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 10월 5일자 오피니언란에서 앤디 케슬러 기고가는 시러큐스대학이 2026학년도 등록 목표를 채우지 못해 3,000만 달러(약 420억 원)의 적자 위기에 놓였고, 미네소타대학은 2년에 걸쳐 2억 2,500만 달러(약 3,150억 원)의 예산을 줄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털사대학은 등록금을 절반 넘게 내렸으며, 전국 대학의 학부 등록률은 지난해보다 4.2% 줄었다고 합니다. 코넬, 예일, 밴더빌트,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이 혁신안을 내놓았으나 저자는 이를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다고 평가했습니다.

저자가 첫 번째로 지목한 원인은 적성(aptitude) 검증 기능의 상실입니다. 1971년 연방대법원의 그릭스 대 듀크 전력회사(Griggs v. Duke Power Co.) 판결 이후 기업이 자체 지능 검사를 실시하기 어려워졌고, 그 빈자리를 대학의 선발 기능이 메웠다는 설명입니다. 이것이 대학의 브랜드화와 자격지상주의(credentialism)를 낳았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입니다. 다만 이 판결은 직무 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은 검사가 특정 집단에 불리한 결과를 낳을 때 위법이라고 본 것으로, 검사를 일률적으로 금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덧붙여 둡니다. 저자는 코넬대학 보고서를 인용해 고용주들이 졸업생의 불확실성 대처 능력 부족에 큰 회의를 드러냈다고 전하고, 포브스 조사에서 기업 임원의 절반 가까이가 아이비리그 졸업생 채용에 이전보다 소극적이라고 답했다고 소개했습니다.

두 번째로 재정 구조에 대한 비판도 이어집니다. 1945년 배니바 부시(Vannevar Bush)의 제안으로 정부가 대학의 기초 연구를 지원하는 체계가 자리 잡았는데, 저자는 대학들이 간접비(overhead)를 과다 청구해 이를 남용했다고 주장합니다. 2025년의 한 연구에서는 국립보건원(NIH) 지원 기관 350여 곳의 협상 간접비율이 평균 58%, 실제 유효 비율은 평균 42%였다고 합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15%로 제한하려 했으나 대부분 무효화되어 행정부가 잠시 물러선 상태이지만, 연구비 삭감 흐름이 대학 재정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전망입니다. 아울러 하버드 정교수의 2026년 평균 연봉은 29만 3,619달러(약 4억 1,100만 원)로 6.4% 올랐고, 연간 등록금과 부대비용이 10만 달러(약 1억 4,000만 원)를 넘는 대학이 16곳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 같은 수치는 모두 저자가 제시한 것이며, 교수 보수와 이념 성향에 대한 평가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음을 함께 밝혀 둡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가장 큰 변수는 인공지능입니다. 저자는 3년 전 GPT-4가 SAT에서 1,410점을 받았고, 이후 변호사 시험과 의사 면허 시험도 통과했다고 짚었습니다. 또한 2025년 하버드 연구에서 인공지능 개인교습이 교실 내 능동적 학습보다 나은 성과를 냈다고 소개했습니다. 학생은 인공지능으로 에세이를 쓰고 교수는 인공지능으로 채점하는 현실에서, 평가와 학습이 모두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우려입니다.

대안으로 저자는 인공지능을 금지하지 말고 적극 활용하자고 말합니다. 강단의 현자(sage-on-a-stage)식 수업에서 벗어나 경험 중심으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3학년 1년을 통째로 팀 프로젝트에 쓰는 가상 인턴십(virtual internship) 구상을 내놓았습니다. 공학, 법학, 철학, 마케팅, 디자인, 영양학 등 서로 다른 전공의 학생들이 자율주행 버스나 요리 로봇 같은 과제를 함께 풀고, 막히는 지점마다 인공지능 개인교습으로 필요한 지식을 채우는 방식입니다. 갤럽 조사에서 대학이 매우 중요하다고 답한 미국인은 2013년 70%에서 지금은 31%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보수적인 시각에서 이 글을 읽으며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 대학이 오랜 세월 쌓아 온 학문적 권위와 신뢰는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므로, 비판이 곧 폐기를 뜻해서는 안 됩니다. 시니어 세대는 대학 졸업장이 성실과 신용의 증표이던 시절을 기억합니다. 그 신뢰가 흔들린다면 먼저 책임져야 할 쪽은 방만한 비용 구조와 학사 관리의 느슨함을 방치한 대학 자신입니다. 둘째,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을 가르치고 인격을 빚는 일의 중심은 사람에게 있어야 합니다. 인공지능은 훌륭한 도구이지만, 판단과 책임을 대신해 주지는 못합니다.

이 문제는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학령인구가 빠르게 줄고 있는 우리 대학들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시니어 세대는 자녀와 손주의 교육에 가장 큰 정성을 쏟아 온 세대이기에, 이 변화를 남의 일로 넘기기 어렵습니다. 누가 먼저 나설 것인가 하는 저자의 물음에, 우리 사회도 이제 답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